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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론(論)


글은 -산울림을 좋아해서 공감하는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던- 다른 분의 글을 토대로 한 포스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1993년 인터넷 BBS KIDS에 서광식(Macroft)님께서 올리셨던 글로, 산울림을 좋아(하는)할 분들과 함께 생각의 공유와 공감을 더하고자 일부 내용을 수정 및 추가 하여 다시 올립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이 인터넷 공간에 올려진지도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물론 산울림의 시간으로 보자면 33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 -


저 보다는 적어도 10년 여 -많게는 20년- 의 나이가 많은 산울림 맴버들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산울림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과 또 한편으로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기도 합니다. -아마도 추앙한다는 것도 인위적이거나 어떤 자의적 힘이 없다는 측면에서 이와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마음의 느낌으로 그들을 좋아했던 분들께는 추억을, 또 혹여 아직 -산울림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분들께는 이런 멋지고 좋은 락그룹(음악인)이 우리에게도 있다(있었다)는 것을 알게되는 내용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옮겨 놓습니다.


더불어 20년 가까운 오랜 시간이 흘렀고 한번 봰 적도 없습니다만, 진정성과 순수한 시각으로 산울림에 대해 인터넷을 통하여 글을 남겨주신 서광석님(Macroft)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한편으론 혹시라도 이글을 서광식님께서 보신다면... 어떠실지도 궁금해집니다.  ^^*


※ 오래된 글을 일부 편집하며 작성을 하다 보니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듯 느껴져, 읽으시면서 조금 혼란스러울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은 음악에 대해서 더 많은 분들이 접할 수 있는 의미로 너그러히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한 시간이 적지 않이 흐른 만큼 세월의 공백에 대한 추가 및 수정이 불가피하게 있을 수 밖에 없었음을 먼저 밝혀드리며, 글을 수정하고 가미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 추가된 부분이 적잖이 있다는 점도 말씀 드립니다. 물론 이것이 인터넷의 알흠?다운 미학으로 승화되는 가치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참고로 읽는 분의 혼란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리기 위해 아래 글의 부연적 설명에 있어 "-" 줄표시가 있는 문구의 빨간색은 서광식님의 글이며, 파란색 계열의 글씨는 저의 생각을 추가적으로 삽입한 내용입니다. 또한 서광식님의 글과 일부 다르다고 생각한 사항에 있어서는 괄호()표기로 내용을 추가 하였습니다.

 

인터넷 게재공간 [ Music ] in KIDS
보낸이 (From)  : Macroft (서광식)
시  간  (Date)  : 1993년11월10일(수)  8시21분39초
제  목  (Title)   : '산울림'론......!


수많은 음악을 들어오면서, 많은 음악/노래를 사랑하였지만 이제는 조금씩 잊혀져가는 음악들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한때는 무척 좋하하였던 노래가 이제는 나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 간다는 것...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나의 음악사(?)를 조금씩 정리하고픈 생각이 듭니다. 다시 옛날의 그 기쁨과 흥분과 감동의 느낌이 되살아나기를 빌면서...

 



■ 산울림의 모든것

 

아마 제가 가장 처음에, 편집증(?)을 보이면서 광적으로 좋아하였던 음악가 (musician)는 '산울림'이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회상", "너의 의미", "내게 사랑은 너무써" 등 단순한(?) 감미로운 발라드만 불렀을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처음으로 rock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던, 아니 '음악'을 알게 해 주었던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는 그들이 발매한 15장 가량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 모두를 외워 부를 정도로 무척 좋아 했던 그룹입니다. 얼마 전 -93년을 의미합니다.- '재결합'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한 이 시점에서 그들의 음악을 한 번쯤 돌아보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1. 우리나라 rock의 역사


우리나라의 rock역사는 '걸어서 하늘까지'에서 신나는 기타를 친 신대철氏(이후에서는 존칭생략)가 아닌 바로 그의 아버지 신중현에 의하여 60년대에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내 가요계 환경에서는 그의 음악이 사이키델릭하게 보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rock의 신념 -당대의 사회상을 어떠한 형태로든 표현했다는 점에서- 은 충분히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마초 사건으로 그들의 음악은 결론적으로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세대가 달라서 그의 음악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봄비'와 같은 곡은 무척 좋더군요...- 그후 '70년대 중반을 지나서 -정확히 77년- '산울림'의 등장으로 새로운 rock의 시대가 열였고, '사랑과 평화', '무당' 등의 직업적 그룹과 '샌드 폐블즈' -샌드 페블즈는 아다시피 서울대 그룹으로 '나 어떡해'라는 노래를 불러 MBC 대학가요제 1회 대상을 차지합니다. 산울림의 둘째 김창훈이 바로 이 샌드 페블즈의 멤버였고, '나 어떡해'는 바로 그가 만든 곡입니다. 하지만 대학가요제는 그가 참가하지 않고, 그의 1기 밑 후배들이 참가한 것입니다.- '활주로' -배철수가 몸 담은 그룹으로 항공대 그룹이죠-, '블랙 테트라', '작은 거인', '옥슨 80', '갤럭시', '마그마', '라이너스', '로커스트' 등 대학가요제 출신의 그룹들이 군웅할거식으로 등장하며 rock의 전성기를 맞이 하였습니다. -뒤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산울림'과 다른 그룹들은 음악적으로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의 그룹들은 후속타의 빈곤과 멤버간의 견해 차이로 해체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중 '블랙 테트라'와 '활주로'가 규합하여 출발한 '송골매'는 젊은이들의 음악세계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80년대 초반 rock 시장을 독점할 정도로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모방주의의 타성과 매너리즘에 빠져 그룹 자체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후속 곡에 허덕이는 상황에 이르러 세월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자유의 바람과 함께 등장하는 정통 hard rock group들의 활동이 시작됩니다.


TV에는 출연하지 않고 몇 개월이나 쉬지 않으며 공연 투어를 시도했던 metal ballade의 선봉 '들국화'와 다분히 pop적인 우수가 깃든 대학생 그룹 '다섯손가락'의 등장은 상당히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이들의 영향으로 꺼져가던 그룹 사운드의 열풍이 다시 살아나면서 정통 hard rock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은 매우 아이러니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후 heavy metal group '시나위', '백두산', 그리고 약간 성격을 달리 접목시켜 rock의 새로운 쟝르를 개척한 '부활', LA metal을 국내에 소개한 'H2O' 등의 group을 비롯해 rock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rock group이 under에서 활동하였습니다.

 

※ 위의 글은 자료 부족으로, '삼호출판사'에서 1987년에 출판한 '레코드 신곡 속보 '산울림편'에서 한국 rock의 역사에 대한 글을 '대부분' 인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음의 '산울림'의 글도 위 책에서 '일부' 인용함을 역시 알려드립니다.

 


2. Prehistory of 산울림 -원래는 Prehistoriky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서광식님께서 의도한 바가 아마도 데뷰 이전의 산울림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아니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았네...' rock이 그다지 대중화 되지 못한 70년대에 산울림의 '아니벌써'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국내 가요계를 흔들어 놓았고, rock의 대중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창완(v, g), 김창훈(b, k), 김창익(d) -2008년 1월 29일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으로 이루어진 형제 rock group -이건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건 음악그룹으로써 형제애와 마음적으로 호흡하고 조화를 이뤄내는 요인으로 작용함으로써 완성도 높은 음악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바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이 처음부터 직업적 rock group이 되기 위해 앨범을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93년 여름 그들이 재결합을 발표하며 '조영남 쇼'에서 말하기를, 72년 경에 김창완이 집에 500원짜리 기타를 들고와서 형제끼리 노래를 부른 것이 그들 음악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김창훈이 기타를 하나 더 장만하자, 할 것이 없는 막내 김창익은 전화번호부와 노트 등을 방바닥에 놓고 형들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드럼 흉내를 내면서 그들 나름의 음악을 표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77년 김창완이 대학 졸업을 하면서 - 취직을 하려는 마음으로- 그동안 작곡 해 놓은 약150여 곡들이 아까워 마지막 정리하는 기분으로 그들은 한장의 앨범을 내기로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레코드 회사가 녹음을 허락하였고, 녹음 날 취직 시험이 있었던 김창완은 과감히(!) 녹음에 참여하기로 결정을 하면서 '산울림'은 정식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됩니다. 산울림이 탄생한 날이기도 합니다.


'조영남 쇼'에서 김창완은 앨범이 나온 후의 에피소드를 말하는데, 앨범을 방송국에 갖다 주었더니 '이거 새 앨범 맞아요? 왜이리 잡음이 많죠?' 라고 하더랍니다. 당시에는 기타에 쓰이던 distortion이나 over driver와 같은 effector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

 


3. Historiy of 산울림

 

1집의 성공으로 그들은 다시 한 번 앨범을 낼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입니다. '실험적 progressive rock sound'라는 평을 받은 이 앨범은 산울림을 국내 가요계의 앞서가는 group으로서 자리를 완전히 굳히게 만들었습니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그들의 실험성이 가장 잘 표현된 앨범, 3집 <내 마음>을 발표하게 됩니다.

 

당시로써는, 아니 현재도 국내 가요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18여 분에 달하는 초유의 대작 '그대는 이미 나'는 B면을 모두 차지하는 국내 가요계의 상식을 뒤엎은 곡이었으며, '나 어떡해'를 원작자로써 당당히 리바이벌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개구장이'를 발표하여 그들의 순수한 음악의 표출구 -동심- 를 찾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3집이 나온 직후 산울림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듯 하여 당시 TBC 가요 대상에서 중창단상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을 받았습니다. '79년에 창훈, 창익의 군입대로 인하여 큰 위기를 맞이하였지만 김창완의 고군분투로 4, 5, 6집이 계속 나오는 바람에 무난히 공백을 매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4, 5, 6집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9년 4월부터 80년 5월까지 만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앨범을 3장 이나 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그 음반들이 정성을 들이지 않은 것도 아니고, 타 가수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기존 앨범에 비해 음악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영남 쇼'에서 김창훈이 말하기를 1년이란 기간 동안 3장의 앨범 발매가 가능할 수 있던 이유는 군입대를 하기 전 이미 3장의 앨범 모두 녹음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81년 창훈, 창익이 다시 복귀하여 그들은 7, 8, 9, 10집을 내놓으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처음의 생각대로 직업적인 rock group이 될 생각은 없었기에, 창훈과 창익은 각각 해태상사, 대우자동차에 취직을 하면서 음악계를 떠나게 되고, "산울림=김창완" 이라는 솔로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4. Post hitoriky of 산울림 -Post hitoriky란 어떤 의미인지 알수가 없네요. 아마도 산울림의 음악적인 가치 또는 평가되는 사항 또는 정식 데뷰 이후의 모습들을 말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만...-

 

일본의 음악 전문지에서도 '세계 수준의 천재'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김창완은 오랜 공백을 깨고 86년 '산울림'이라는 이름을 내놓게 되며, 다시 물밑 잠수를 하였다가 92년 12집을 발표하면서 그는 음악적 변화를 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11집에서는 포크라는 새로운 색채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동안 김창완은 '꾸러기', '동물원'과 같은 후배 그룹들을 양성하면서, 작곡가, 드라마&영화 음악가, 음반 기획자 등으로도 활동 하였으며, <기타가 있는 수필>과 같은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김창완에 버금가는 음악성을 보여 줬던 김창훈은 비록 음악계를 떠났지만 85년 김완선의 데뷰앨범과 2집 앨범의 음악 제작을 맡기도 하였으며, 93년에는 그동안 자신이 써오던 음악을 모아서 독집 앨범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93년 여름,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의 모임이 주최한 남이섬 콘서트에서 무려 10년 만에 라이브 공연을 보여준 산울림은 이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재결합하여 새앨범을 내겠다고 발표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영남 쇼'에 출연하여 그들의 주옥같은 곡들을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습니다. 솔직히 제가 산울림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해체되고 난 뒤였기 때문에 김창완 혼자가 아닌 그들 모두가 연주하는 것은 이때 처음 보았습니다. 비록 40을 바라보는 -이젠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죠?- 나이들이지만 그들의 연주는 그 어느 rock밴드에 못지 않는 연주였다고 생각합니다. dance music이 난무하는 요즘의 -90년대의 음악은 주로 그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국내 가요계에서 그런 순수한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을 보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그때 들었던 솔직한 생각입니다... ;-)

 


5. Sound of 산울림

 

산울림의 음악은 어떠 어떠하고, 어떠 어떠한 성격, 색채 등이 있다...라고 쓰고 싶지만 솔직히 제가 음악의 전문가가 아닌이상, 저의 느낌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제 친구는 산울림을 '한국의 비틀즈'라고 비교를 하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저는 '한국의 퀸'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아니 퀸이 '영국의 산울림'인가? :) 제가 퀸에게서 느끼는 이미지가 산울림에게서 느끼는 이미지와 조금 비슷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산울림의 음악적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것은 바로 '순수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제목과 가사가 잘 기억이 나지않지만 그들의 노래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너무 큰것을 원하고 있어요. 추운 겨울날에 가시밭길을 헤쳐 나갈 수는 있지만, 달을 따오라는 것은 너무 하잖아요?'


이런 식의 내용인데, 일반적인 가요의 사랑노래가 '이상적'이거나 '현실적'인데 반하여 그들의 노래는 '순수'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 노래를 '현실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요...- 또, 그들의 순수성은 바로 '동심'을 노래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산할아버지', '개구장이', '꼬마 인형에 날개를 달자', '어머니와 고등어', '꼬마야' 등... 그들은 어린이의 시각으로 많은 노래를 불렸고, 실제 동요앨범을 몇 장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순수성'은 '음악적인 추구'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소위 대중음악들은 '음악'을 위한 음악은 많이 찾아 볼 수 없고, '인기'를 위한 음악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가수가 탤런트인지, 개그맨인지, MC인지... 도대체 알 수 없을 정도니까요. 또한 '음악적 재능' 때문이 아닌 '외모'때문에 가수로 나설 정도니... 물론 가수가 재능이 많아서  여러가지 일을 할 수도 있고, 음악만 사랑한다면 '재능'이 없어도 가수가 될 수 있겠지만, 과연 그들이 '순수한 음악'을 추구 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산울림은 데뷰때 부터 결코 직업이나 인기를 위해서 노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만의 '음악'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만족을 어느정도 얻었기에 미련없이 '산울림'을 떠날 수 있었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왜 재결합하냐고 궁금해 하실 분이 계실텐데, '조영남 쇼'에서 밝히길 그들은 가장 만족을 할때 떠났지만 언제가는 다시 그들의 음악을 추구할 때가 오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순수한 음악 추구'에 의해 그들의 음악은 많은 '실험성'을 보이게 됩니다. 그들의 음악을 살펴보면, 현재의 국내 가요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실험적인 곡들이 많습니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같은 곡은 3분 여에 달하는 연주(전주)가 있으며, '떠나는 우리님', '청자'와 '백자'와 같은 곡들은 전통 가락과 현대 음악의 결합을 시도하는 주목할 만한 곡들입니다.


또한 '소낙비'와 같은 헤비메탈 곡이 있으며(혹자는 산울림을 우리나라 헤비메탈의 효시라고 말합니다.) 록 발라드, 포크, 컨츄리와 같은 다양한 쟝르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초기 작품들은 프로그레시브적인 성향이 매우 강합니다. 앞에서 말한 '그대는 이미 나'는 18여분에 달하는 대작으로 그들의 실험정신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곡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지 곡의 길이로 실험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음악 그 자체가 매우 실험적인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솔직히 김창완은 천부적인 보컬리스트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참 편하죠...(저의 생각은 조금 다르긴 합니다. 듣기 편하다기 보다는 김창완만의 특이한 음색이 산울림의 음악에 가장 알맞다고나 할까요? 어니, 깔끔함이라고 할까요? ^^ )-

 

하지만 그들이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요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참신한 감각의 음악들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가수나 그룹이 '그들만의 음악'을 가질 때 좋아하게 되는데, 바로 산울림은 그들만의 음악과 색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내가 들어보지 못한 산울림 노래라도 그 노래의 느낌에서 '산울림 음악'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겁니다.

 


6. Discography of 산울림

 

사실 discography는 각 앨범과 수록 곡을 싣는게 정석(?)인데, 산울림의 모든 앨범이 집에 있는 관계로 수록 곡은 정확하게 적지는 못하겠습니다. 따라서, 1~11 집까지는 앞에서 언급한 책의 평을 인용하고, 나머지는 저의 기억을 살려서 각 앨범별로 간단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

 

  

[정규 앨범]

 

 

1집 <아니 벌써> : 77년 12월 15일


우리 가요계의 오랜 뿌리를 내리고 있던 트로트(트로트가 '전통 가요'라는 말은 절대 잘못 된 말이니 쓰지 맙시다! -노동은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신 분은 이유를 아시겠죠? (시간의 흐름을 합산하여 일정한 세월 동안 같은 풍의 노래와 음악이 이어져 왔다는 측면에서 전통이라 말하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것이 나와 어떤 관계 또는 좋아하는가 아닌가의 차이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겁니다.)- 의 굴레 속에서 완전히 탈피한 독특한 rock sound의 앨범이 히트했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앨범 뒷면의 설명을 보면 'dynamic sound, 생동감 넘치는 리듬 터치, 개성적인 맬로디의 진행과 창법'이라고 설명해 놓았는데, 그 당시로서는 우리 가요계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획기적인 기념비적 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하나의 앨범에서 한 두곡의 싱글을 위주로 앨범을 만드는 우리 가요계에 비하여 이 앨범은 앨범 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선 된 명실 상부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구어체 문장 그대로를 가사로 사용해 위트와 파라독스가 생동감 있게 표현된 노랫말 역시 우리 가요계 발전에 커다란 시금석이 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1집에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아니 벌써'와 '문 좀 열어줘'. '불꽃놀이'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와 '안타까운 마음'과 같은 곡들은 산울림의 개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앨범 자켓을 보면, 자켓의 1/4이 조금 넘는 크기의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 왼쪽 중간에 있고, 그 오른쪽에는 그들의 이름'산울림'을 특이한 글씨체로 적어 놓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자켓의 포멧이 12장의 정규 앨범이 나오면서 한번도 바뀌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만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 내용만이 바뀌었는데 -그림은 계속 크레용으로 그렸으며, 소문에는 김창완이 직접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아직도 가수의 사진을 앨범 자켓에 싣는 것이 대부분인 것을 생각하면, 첫 앨범의 자켓에서 부터 그들은 이미 앞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집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78년 5월 10일


1집이 우리 가요계에 충격을 주었다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때 1집의 곡들은 평범한 rock sound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 하였습니다. 하지만 2집에 와서 그들은 강한 실험 정신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헤비메탈적인 사운드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어느날 피었네'와 같은 곡은 전주가 2~3분이나 되는 프로그레시브적인 곡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떠나는 우리 님'은 전통 가락을 현대적으로 변형 시킨 곡으로, '둘이서'와 함께 산울림 초기의 대표적인 발라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창훈이 만든 '나 어떡해'는 원작자가 포함된 산울림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는데, 그건 산울림의 특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노고지리가 부른 '찻잔'과 임지훈, 이선희가 부른 '누나야'와 같은 곡들을 원작자의 느낌으로 다시 리메이크(커버?)한 것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음악의 범위와 다양성을 넓혀준 또다른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산울림의 음악은 바로 그러한 실험적 자세에서 출발함으로써 음악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3집 <내 마음> : 78년 11월 1일

산울림을 우리나라 헤비메탈의 효시로 보게하는 앨범이 바로 3집입니다.
컨트리 블루스 곡 '한마리 새 되어' 이외에는 모두 둘째 김창훈의 작품인데 그의 실험성과 작곡 솜씨가 돋보이는 앨범입니다. 강한 디스토션이 걸려 있는 메탈적인 목소리가 인상적인 '내 마음(내 나음은 황무지)'와 문제의 18분짜리 대곡 '그대는 이미 나'에서 왕성한 실험정신이 나타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입니다.

 

4집 <특급열차> : 79년 4월 15일


3집까지의 앨범과는 달리 이 앨범은 그간 이들이 발표했던 연극, 영화, 드리마 등의 주제 음악을 묶어서 만든 편집 앨범 스타일의 앨범으로 대중적으로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이 앨범에서 산울림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타이틀 곡 '특급열차'는 추송웅의 연극에 사용되었고, '카멜레온' 역시 연극 '제2의 관계'에 사용된 곡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소', '풋내기들의 합창', '가을에 오시나요'는 라디오 연속극의 주제가였고 '거인의 숲'은 TV 연속극의 주제가였습니다. '유리인형' '어디로 갈까' '내일 또 내일' '바람 부는 강 언덕'은 산울림이 음악을 담당했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내일 또 내일"에 사용된 곡입니다.

 

5집 <한낮의 모래시계> : 79년 9월 20일


창훈, 창익의 군입대 후에 나온 앨범으로 전체적으로 사운드 전개가 신선하면서도 서정성이 강한 주제를 rock sound와 멋지게 조화시키고 있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에도 전통가락과 rock의 조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무녀도'와 '백자'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블루스한 리듬의 '왜! 가'는 김창완이 17살때 만든 그의 첫작품이라고 합니다.

 

6집 <조금만 기다려요> : 80년 5월 5일


5집과 마찬가지로 김창완의 역활이 컸던 앨범으로, 라디오 연속극 '빨간풍선' 노고지리가 불렸던 '찻잔',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가 크게 히트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타이틀 곡 '조그만 기다려요' '못잊어' '어느 비 내리는 날' 등에 더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7집 <가지 마오> : 81년 8월 1일


군대에세 제대한 동생들이 합류해 치밀하게 구성하여 만든 앨범으로 산울림 중반기의 명반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7집에는 헤비메탈 사운드가 돗보이는 '가지마오' -이 곡은 이후 가수 이은하가 또다른 느낌으로 다시 불렀습니다. 그러고보면 가수 이은하는 '회상'을 비롯하여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등 김창완의 노래를 적지 않이 불렀습니다.- 와 소울풍의 '먼 나라 이야기' 등의 곡도 있지만, 이 앨범의 특징은 그동안 강한 실험성과 더불어 전통 rock과 우리 가락의 현대화를 거쳐 그들만의 뚜렷한 색채라고 할 수 있는 '산울림식'의 rock ballade를 정립했다는 점입니다. 이 앨범에 실린 '독백'과 '청춘'은 아직도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산울림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개인적으로는 '하얀달'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8집 <새야 날아> : 82년 5월 25일


산울림 후반기의 대표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산울림 8집 "새야 날아"에서는 '내게 사랑은 너무써'와 '회상'이 굉장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 때문에 그들이 쌓아왔던 이전의 이미지 -실험적인 rock sound- 가 조금은 가려지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 앨범입니다.

 

9집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 : 83년 1월 10일


다시 그들의 옛날 모습을 보여주는 앨범으로써 특유의 헤비메탈적인 사운드를 잘 보여주는 명반입니다. 어쿠스틱풍의 '더 더 더' -여자분들이 좋아하는 노래죠. 물론 저도 상당히 좋아합니다. 분위기 잡는데 이만한 노래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 입니다.- 와 '황혼' -이 곡도 후에 신촌블루스가 다시 불렀습니다.- 같은 곡들이 인기를 얻었고, 전형적인 메탈 사운드인 '소낙비' 그리고 '저기'와 같은 곡은 더욱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소낙비'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로 -아시는 분이 거의 없으시죠? 샤유팅 창법이 아주 멋집니다.- 외국 메탈곡에 못지않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10집 <너의 의미> : 84년 6월 20일


그동안 산울림의 음악을 총결산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이 포함된 걸작 앨범입니다. 초기의 음악과 비교하면 생동감이 꽤 줄었지만 '원숙미'라는 것이 가미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수록 곡들이 수준 높게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up tempo의 '꿈이야 생각하며 잊어 줘'는 아주 흥겨운 노래로, 산울림의 해산을 암시하듯이 콘서트의 마지막 곡으로 자주 쓰였던 노래이며, 그들의 장기인 동요 스타일의 '지구가 왜 돌까'와 '독수리가 떴네'는 보컬의 익살기가 넘쳐납니다. 그리고 함께 수록된 '너의 의미'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있는 산울림의 대표적 인기곡입니다.

 

11집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86년 9월 10일


창훈, 창익의 탈퇴 후 김창완이 솔로로 나와 만든 첫 앨범으로써, 생동감 넘치는 rock sound로 우리 앞에 등장했던 산울림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앨범은 종전의 산울림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김창완의 솔로 앨범이라서 그런지 그전의 음악과는 색채가 무척 다른 마치 보통의 가요를 듣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수록 곡 중 비와 관계된 노래가 무척 많은데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비의 마음', '도시에 비가 내리면', '옷 젖는 건 괜찮아' 등의 노래가 있으며, '안녕'은 영화 "청춘 스케치'에 소개되어 뭇 청소년들의 마음을 적셔준 노래입니다.

 

12집 <불안한 행복> : 91년 7월 1일


11집 발표 후 거의 5년 만에 발표된 앨범이지만, 라디오에서 거의 들을 수 없을 만큼 상업적으로는 산울림 역사상 가장 크게 실패를 본 작품입니다. 하지만 김창완의 순수성이 무척 가슴에 와닿는 앨범입니다. '불안한 행복'은 독백을 하듯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노래로써 누구나 공감할만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꿈꾸는 공원', '내가 돌아갈 곳은' '추억' '슬픈 편지' '동창생' 등 무리없이 감상할 수 있는 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히 원작자의 느낌으로 다시부르기라는 측면에서 인기를 끌었던 '누나야'는 임지훈이 부른 느낌과는 또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종곡'은 상당히 충격적(?)이므로 꼭 한 번 들어 보시기를... :)

 

13집 <무지개/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97년 2월 1일

 ※ 13집에 대한 내용은 서광식씨께서 작성한 이후 발매된 앨범이기에 이번에 새로 추가한 내용입니다.


산울림의 마지막 정규앨범으로 산울림이란 이름으로는 이제 더이상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앨범입니다. 산울림이란 이름이 전설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텐데... 담겨 있는 음악들은 그 마지막이라는 것을 반어적이고, 역설적으로 표현하려는 듯 노래들의 제목들 부터가 어떤 마지막이란 느낌은 들지 않을 만큼 그간의 산울림만의 느낌 그대로입니다.

 

처음 듣고는 초기의 산울림을 느끼게 했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를 비롯해 '나도 너처럼' -생각하고 들어서 그런지 '나도 너처럼'이란 노래는 가사에서 산울림이란 이름을 보내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실황음악으로 실린 '가지마오'가 그 마지막을 아쉽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FAX 잘 받았습니다' 등은 정말로 산울림 다운 산울림의 색채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비틀즈나 E.L.O(Electric Light Orchestra) 등의 유명 그룹들 대부분은 13번째 앨범이 끝이었거나 인기가 끝났다고 하는 팝음악의 징크스가 있었다는 사실이 산울림에게도 적용된 것인가... 의아함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을 짜맞추려 한건 아닐텐데 말이죠.

 

[그 외 앨범들]

 

 

<기타가 있는 수필> : 83년 10월 15일

김창완의 솔로앨범으로써 말 그대로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와 함께 김창완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어울리는 앨범입니다. '어머니와 고등어'가 널리 알려졌지만, 그 외에 '그래 걷자' '초야' '당신이 날 불려주기 전에는'과 같은 조용한 노래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특히 '초야'는 실제로 '신혼 첫날밤'에 부르기 딱 좋은 사랑을 고백하기에 좋은 노래입니다. '꿈'과 같은 토크송도 주목할 만한 노래입니다.

 

<동심의 노래>

동요곡집 <개구장이>와 비슷한 동요모음 앨범으로써 '산할아버지' '꼬마 인형에 날개를 달자'와 같은 곡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노래를 가슴 깊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앨범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동명의 영화 음악을 맡았던 김창완이 만든 앨범으로 큰 인기는 얻지 못하였지만 상당히 재미 있는 앨범입니다. 특히 '가까이 다가 가다가 다시 오다가 다가 가다가....'식으로 빠르게 부르는 노래는 무척 재미있습니다. B면에는 어린이 뮤직컬 '피리부는 사나이'의 음악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창완의 새로운 여행>
'꼬마야'가 히트된 앨범으로, 김창완이 맡은 TV 드라마의 노래들을 모은 앨범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앨범인데, 특히 86년 어린이날에 김창완이 직접 주인공을 맡았던 어린이날 특집 뮤직컬(TV 뮤직컬)의 노래들은 무척 아름다운 노래들입니다.

 

<김창훈, 착각>
그동안 잠잠히 있던 김창훈이 93년 여름 발표한 앨범으로, 제가 알기로는 CA만 나온 것 같습니다. 이 앨범을 들으면 결코 산울림이 김창완 혼자서 주도한 그룹이 아니라 김창훈의 역활도 대단히 컸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음악에 식상한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앨범입니다.

 

<산울림 The Greatest Hits 1, 2, 3, 4>
산울림의 best 앨범으로써 1~10집과 <기타가 있는 수필>에서 선곡하여 4장의 앨범으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Vol. 4의 1, 2, 3번 곡은 전에 발표되지 않은 곡으로 괜찮은 발라드입니다.(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 )

 

<꾸러기들의 굴뚝 여행>
기억이 오래되어서 앨범 제목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김창완이 꾸러기를 만들어서 딱 100일간의 활동을 하며 내놓은 앨범입니다. (흠... 앨범이 2장인걸로 기억하는데...)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라는 긴 제목의 노래가 유명하죠. 재미있는 것은 '사랑을 해... 당신과 내가...'라는 10초짜리 노래가 있으며, 꾸러기들이 발성연습을 하는 것도 들어 있는 재미있는 앨범입니다. 꾸러기에서는 임지훈과 최성수와 같은 걸출한(?) 가수들을 탄생시키기도 하였죠...

 

기타...
그외의 앨범으로는 '산울림 록 사운드' '산울림 러브 사운드' '산울림 록 월드' '산울림 사랑의 발라드'와 같은 compilation 앨범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산울림 맴버이자 산울림 형제의 막내 김창익의 죽음을 계기로 산울림에 대한 그간의 정리를 생각한 김창완의 노력으로 산울림을 총결산하는 The Story of Sanullim - (Complete Studio Recordings)가 많은 팬들의 기대 속에 발매 되었습니다. 하지만 음질과 디자인 마감 등의 문제로 리콜 사태로 이어지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산울림 박스세트 총평 : 아쉬운 너무나 아쉬운'이란 글과 '한국 록의 전설, 산울림의 모든 것을 담은 박스세트'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7. 산울림 is forever!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조금은 산울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고치고, 탄생 15년을 맞이하여 -그런데 벌써 그 이후 벌써 17년이 훌쩍 넘어 버렸네요. 그리고 또 그렇게 세월은 흘러 가겠지요?- 그들의 재평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열광적인 팬이라서 그런지 객관적인 입장으로 글을 쓰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의견이 계시는 분들은 많은 충고(!)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진정한 rock group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산울림이 다시 한번 재평가되어 그들의 음악이 이 시대의 진보적인 음악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산울림의 재결합을 기뻐하면서, 보다 나은 음악이 탄생하기를 기대합니다.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Macroft (서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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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분의 글을 새롭게 다룬다는 측면에서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세월을 포함해서 이것 저것 감안하며 글을 전개한다는 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였습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기록에 남을 만한 가치있는 산울림이라는 그룹 -이제 김창완 밴드로 이어지는- 에 대하여 다른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글을 새롭게 하였다는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글을 보시고 시간이 나신다면 잠시 산울림의 노래를 들어보시는 건 어떠실지 살짝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산울림의 노래들을(연속재생 또는 좌우 화살표로 곡 이동으로 청취가능) 유튜브를 통해 아래 첨부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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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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