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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넷 시대가 좋은 건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있습니다. 뭐~ 어느 것이든 보통 하는 얘기처럼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라는 식의 얘긴 아닙니다. 그것은 인터넷(사용 또는 그것을 언급하기) 이전에 사람들의 사고하는 습관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나의 어려움을 위안 삼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는(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게 많이들 표현하곤 하죠. 

"힘든데, 너만 힘든 게 아냐. 

다른 많은 사람들도 힘들거든.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고 살아~!" 


그러한 경향에 대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 언제 부터였는가?!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이란 원래 타인의 상황을 비교하고 투영하여 나를 바라보는 존재인지에서부터 어떤 누군가에 의한 보이지 않는 힘의 영향을 받게 된 결과, 그렇게 생각하도록 된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야 해결 방안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얘기 나왔으니 인터넷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에 대해 먼저 언급해야겠습니다. 깊이 있는 생각의 고찰 없이 그럴듯한 내용들이 인터넷의 시스템적이고 도구적인 특성에 의해 빠르게 전파된다는 사실도 하나의 문제일 수 있으니 말이죠.


최근 SNS를 통해 퍼지고 있는 (그러나 원 출처는 명확하지 않은) "한 여자가 11층에서 뛰어내렸다"라는 제목의 (삽화가 가미된) 이야기는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이야기는 그렇게 과거 습관처럼 생각과 판단을 하는 경우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적잖이 전파되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삽화로 만들어진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떻게 보셨는지요?!

전통적이라 해야 할지 과거 습관적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이제껏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판단할 때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전통적 관점(?)에서 삽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힘든 이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느껴져 감동적이기까지 하거든요. 하지만 왠지 어딘가 개운하지 않은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상기 이야기에서 전하는 바는 좀 냉철하게 읽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란 모두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를 두구 페르소나를 썼다고 하나요?)과 사람이 지닌 속성이 원래 그렇다는 것.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니 상기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사안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는 점에서 석연찮다고 저는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저는 아주 어린 시절 교과서에 나오던 우화 토끼 이야기(자신은 매번 약자로써 어려움만 겪는다고 자책하던 토끼가 현실을 비관한 나머지 더 이상 사는 건 의미 없다고 판단하여 죽기 위해 물로 뛰어들려고 하는 순간 자신보다 약한 개구리들이 토끼를 보고 무서워 도망가는 걸 보면서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 있음을 깨달았다던 그 이야기...)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이 기억을 근거로 할 때 예전부터 교육적으로도 어떤 의도가 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힘들어도 참고 살아라는...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요?


다행스러운 건 최근 이 이야기가 퍼져나간 진원지로 보이는(국내 모 인터넷 커뮤니티의) 그 게시 글에 댓글로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댓글 중에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앞서 언급한 전통적 인식과 다르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런 류의 글 짜증 나... 불행까지 상대적인 거야? 그냥 내가 불행하면 불행한 거지. 내 인생인데... 이런 건 진짜 불행해보지 않은 사람이 쓰는 거다. 

나 어렸을 때 울집 빚 때문에 가게와 집 중에 집을 포기하고 가게를 택한 적이 있다.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에. 그래서 가게 한켠 쪽방에서 온 식구가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따뜻한 물도 안 나오는 상가 화장실에서 씻으면서 얼마나 서러웠는지... 나중에 커서 친구들한테 힘들게 살았다고 말하니까 그놈의 소말리아 이야기하더라. 밥도 못 먹는 애들도 있는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아 ㅡㅡ 그냥 내가 많이 불행했다는데 무슨.... 이런 건 진짜 노예들 딴생각할까 봐 너 정도면 행복한 거야 세뇌시키는 것 같다.


이런 글은 진짜 힘든 사람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다 힘드니까 참으라는 소리밖에 안 되거든.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해줘야 그들이 비극에서 벗어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제가 생각하는 바도 동일합니다.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그러니까 무엇보다 제도를 바꿔서라도 사람들이 겪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이죠. 범죄가 늘어나는 것이 진짜 사람이 악해서 그런 건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건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저 교도소에 쳐 넣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거지요.


그러한 방법은 수 천년 이상 경험한 바 아닌가요?!! 또한 이미 수없이 봐 온 것이기도 하구요. 정작 힘 있는 자들은 어떤 짓을 해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모습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집필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당시 귀족들은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래서 혁명은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www.imgrum.net



어찌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 과거 생각의 습관을 타파하고 한 번쯤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겁니다. 살기 어려워 극단의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정말 죽고 싶어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루 평균 40여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현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이런 류의 우화로 해결한다는 건.. 더 많고 큰 고통만 양산할 뿐입니다. 뭐~ 상기 삽화의 내용이 공익광고는 아니지만 이 나라에서 펼치는 공익광고류에서 하는 소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판단에서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그리 어렵지 않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미 세상은 풍요롭거든요. 단지 걸림돌이란 인식과 제도의 문제일 뿐이죠. 즉, 인구가 줄어든다고 그저 출산만 장려할 것이 아니라 이미 태어나 살아가는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 아니겠냐~! 뭐 그런 얘깁니다.


이런 생각의 흐름 속에 상기 "한 여자가 11층에서 뛰어내렸다"라는 이야기의 출처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단서가 될만한 이미지를 근거로 구글링을 해 보았고, 유추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확인한 것은 상기 이야기의 최초 전파 시점이(그 이전이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올렸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까지 찾은 바로는 2007년도 5월, 중국의 어느 블로거가 올린 포스트가 가장 오래된 것이고, 그 이후로 중국 내에서 상당히 전파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지 출처: blog.sina.com.cn 포스트 화면 갈무리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출처가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인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지금 국내에서 이 이야기가 전파되는 것 이상으로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많이 공유되었다는 점입니다.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서 확언할 순 없겠지만, 간접적으로 접한 바에 의하면 중국 역시 빈부 격차가 우리 못지않고, 민초들의 삶이 팍팍한 것도 유사하다는 얘긴 적잖이 들어온 터라서... 다시 말해 익히 알고 있듯이 중국의 인구는 세계 최고라는 점에서 중국 인민들이 느끼는 삶의 고통 또한 만만찮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그 마음을 돌려놓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많은 우리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중국의 인구가 우리보다 훨씬 많은 건 분명한데... 정작 중요한 인구 밀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남한의 면적을 기준으로 인구를 환산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이미지 출처: www.nationsonline.org(일부 수정)



땅 크기에 비례하여 판단할 때, 중국 면적은 남한의 약 96배가 큰 960만 제곱킬로미터이고, 인구수가 약 13억 7천만 명입니다. 이를 중국이 한국 땅 크기 정도가 된다고 가정하면, 인구수/96 = 1,400만 명. 즉, 그러니까 중국이 한국 땅 크기 정도가 된다면 인구수가 1,400만 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국과 비슷한 땅 크기 나라들은 인구가 몇 명일까?


그러니 이 나라에선 사람 알기를 우습게 알고 사람 가치가 땅에 떨어질 수밖에요. 헬조센의 원인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고, 매일 같이 수 십 명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거다... 후~! 참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이야깁니다.


그동안 그럴듯한 얘기에 대해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늘상 생각했으면서도 저 역시 인구가 줄어도 된다는 얘기는 정말 미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왜 인구를 늘려야 하는지(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가 무엇인지) 좀 더 고민은 해봐야겠으나... 


거듭 강조해야 할 말이라서 다시 한번 언급하고자 합니다.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또한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섣불리 전파하는 건 고려해야 한다는 점과 그럴듯한 어떤 명제가 주어졌을 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처럼 곱씹어 봐야 한다고.. 홍세화 선생의 말씀처럼 그 생각이 네 생각이냐를 되물어 봐야 한다고 말이지요.


지금 당장 풀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한 가지 실마리는 확실히 찾은 것 같습니다. 타인의 불행이 행복을 가르는 기준일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것이 위안일 수 없는, 외려 잔인한 생각임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누군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을 원했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주입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게 이젠 명확히 보이는 것 같다고...

과연, 그들은 누구였을까요?!! 너무 뻔한 얘긴가요?!


글의 마무리는 깔끔하게 하고자 합니다.

타인의 불행이 행복의 기준이 아닌 이 헬조센을 변화시킬 근본적 실마리는 바로~!!


"남한의 인구는 지금 보다 더 줄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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