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분자 생명체로써, 그것도 인식을 바탕으로 한 감각적 인지력을 지닌 인간은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덥디덥다고 알려진 중동 땅에 잠시 잠깐 발을 디뎠던 적이 있었다. 당시 새벽 온도가 섭씨 28도를 넘어선다는 기내 안내 방송을 들으며 실제 공항에 내릴 때 온몸으로 느껴지던 그 더위는 진짜 이럴 수가 있나 할 정도였는데, 올해 한반도의 여름은 그때의 기억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새벽 온도가 32도를 넘나들었으니. 이래야 헬조센 다운 건가?
정말 전쟁 같은 여름이었다. 이 세상이 사람 살라고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고 살게 만들었다면, 그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견딜 수 없는 여름의 더위와 그 전쟁 속 더위에 덧붙여진 일들을 떠올리자면.
원인과 결과로 말할 수 있는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이 불덩이 같던 더위 속에 벌어진 일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뜨거운 차량 안에서 죽어간 아이들과 잘못 짜여진 정치 사회 구조를 바로잡고자 했던 이가 역으로 어처구니없이 희생을 당했으며, 이 더위가 이제 좀 물러가나 싶더니 어마 무시한 태풍이 몰려온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는데, 정착 미풍에 그쳐 위안을(그러나 또 누군가는 일기예보가 엉망이라고 난리 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삼으려는 찰나 물폭탄으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그렇게 며칠 째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느낌적으로 떨어진 온도에 얼추 좀 살만한가 하고 느낄 즈음 불쾌지수의 척도라는 습도가 100%에 육박하니 환경에 민감한 유기분자 생명체인 내 정신은 그에 적당한 우울함으로 채워져 버리고 말았다. 여름을 보내며 조금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보자니 전쟁 같은 여름의 느낌은 그래서 더했을지도.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명징하게 느껴지는 단서 하나는 말할 수 있다. 그게 쉽지 않은 건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로 인해 비롯되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이유를 따져보자면 그건 사실 사람이란 무엇이냐는 정의조차 쉽게 내릴 수 없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어떤 힘을 지닌 이들이 아니라면 쉽게 사람을 재단해선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언제나 화가 나는 지점도 바로 거기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 스스로 악하고 싶은 이가 있을까? 어린이 집 교사들의 폭력성이나 차량 운전기사들에 의한 사망사고와 옥천 일가족 사망사건을 접하며 드는 생각이 그랬다. 어쩌면 그들에겐 이미 좋은 상황이 아니었을 수 있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 모 어린이집 차량 갇힘 사망 사고 관련
만들어진 결과가 나쁜 것으로 욕하기보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범한 이들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구조적인 문제를 따져야 함에도 언제나 결말은 대부분 그 상황에 놓여있던 이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모두 그들을 욕하기에 바쁜 사람들 때문이었다. 화는 화를 낼 수 있는 쪽으로 향한다는 판단은 정확하다. 특히나 스스로는 생각을 한다고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또 다른 평범한 사람들. 물론, 이 역시 같은 문제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고 있는 이들 또한 어떤 면에서는 구조적 문제의 희생물이기도 할 테니.
나 또한 왠지 어딘가 망가진 느낌이 든다. 이 전쟁 같은 여름이 가져온 결과라고 치부하고 싶다. 아마 정말 그럴지 모른다.(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이렇게라도 최면을 걸어야...) 뭔가 재밌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문젠 언제나 같다. 그게 뭔지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쉽지 않다는 거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환각 속에라도 빠질 수 있다면 좋겠다.
분명, 이 여름이 가고 나면 서늘한 가을이 아니라 불현듯 추워질 거라고 확신한다. 이미 이 땅의 계절이란 여름과 겨울 두 개뿐이니까. 이게 헬조센에 걸맞은 환경이 아니고 뭐겠냐. 사람들 살기가 좀 나아졌으면 좋으련만. 촛불 혁명의 기억은 가물해지고 나라는 참여정부 시즌 투(2)로 가고 있는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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