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은 아니라도 때때로 지니게 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그건 하나의 화두와 같은 것이기도 한데, 평소라면 별 시답지도 않은 그 물음이 어느 순간은 또 가볍지 않게 다가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을 것인가?
너무도 흔히 되뇌는 말이기에 그렇기도 하거니와 또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수 있는 계재는 아니라서 결국 결론 없이 혹은 개똥철학 같은 자신만의 생각에 빠지고 마는 것이( 또는 그나마도 뭔 생각을 한 건지 알 수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마는 게) 보통입니다만, 이 세상 그 누구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알 수 없는 건 그럼에도 무의식일지언정 삶은 본능이라는 겁니다. 살아야 한다는 거죠. 그건 마치 삶이란 태어난 이상 쉬 저버릴 수 없는 어떤 숙명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살아남을 것을 갈구한다는 건 이성을 지닌 우리 인간 사회에서조차 정글 법칙과 다를 바 없는 적자생존의 현실을 자연의 섭리로 인식하며 그런 상황에 직면할 때 "강함"을 상기하곤 한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그것은 살아야 한다는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서조차 살기 위해서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부여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강하다는 건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많은 이들이 인식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된 강함이란 힘이 센 것이 아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은 무슨 명언처럼 회자되기까지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이 말속에서 현실이 보입니다. 그래서 현실은 곧 속세를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연결고리로 생각을 이어가다 보이는 건 그것이 진짜 이성적인 것에서 기인한 건지는 알 수 없어도 무언가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살아남아서 슬픈 이들의 모습입니다.
이미지 출처: www.thestar.com
살아남을 것인가? 죽을 것인가?
혹자는 이 말에 보태 원래의 뜻과 관계없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를 인용하기도 합니다. 살겠다는 다짐에 죽을 각오를 다지는 이 문구가 무서운 건 "그렇게 살아서 무엇을 얻고자 함이냐? 고" 하는 물음입니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이 세속을 살아가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서 말이죠.
이런 생각 끝에 문득 살아남아서 강한 이들이 그럴 만큼의 충분한 이유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살아남아서 강하기보다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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