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새로운 옷'이라고 하면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유입 경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배경이 원인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나 "벌거숭이 임금님"이라고 하면 바로 안다는 건 바로 그 직접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근대화에 앞선 일본을 통해 이상하게(?) 번역되어 우리에게 알려졌으니 그럴 수밖에요.
누구나 알다시피 이 동화는 안데르센의 작품입니다.
당연히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안다는 것의 기준을 체득하고 그대로 실천한다고 하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자면 얘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하자니 "황제의 새로운 옷(Kejserens nye Klæde)"이라는 원제가 더더욱 어울린다 싶습니다. 또한 공교롭게도 이 소재를 떠올렸을 때 그가 기사화되었다는 점도 살짝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이 얘기는 제각기 정도의 차이와 그 연유는 다를지라도 그 중심에 허영심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마음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였습니다. 아울러 세상이 변해 사람들의 그런 마음이 사라지길 바라며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풍자로 되돌아보자는 의미일 뿐 특정 인물을 욕보이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노파심에 밝혀 둡니다.
"황제"라고 하는 이젠 더 이상 세상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칭호(?)가 별칭처럼 따라붙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 건희제! 아마도 그건 우리가 왕정 시대에서 불과 100년의 언저리에 살고 있다는 것과 제아무리 오래 산들 그 상황적 여건과 특성에서 벗어나기 힘든 한계를 지닌 사람으로서 백년도 살기 어려운 한정적 삶을 영위한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지 출처: 손문상 화백 그림 / blog.daum.net/presshong71/247
건희제! 그가 그렇게 불리고자 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상컨대 설마 그렇게까지 불리길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보여 온 그간의 행적에서 이를 바라 본 이들의 눈과 귀가 각자의 뇌에 전달한 시각 및 청각 정보가 그러했을 것이고, 누군가 먼저 그렇게 칭한 소리를 듣고 공감하여 그리 불리어졌을 것이라는 추론은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호 통제라~!
누구보다도 좋은 것만 먹고, 보고, 했을 그가 그리 많지도 않은 나이에 쓰러졌습니다. 그것도 3년이 넘도록 특정 관계자 외에 그의 자취를 아는 이도 거의 없습니다. 그저 최첨단 시대임을 확인이라도 시켜주겠다는 듯 멀찌감치 드론을 띄어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연출하듯 알렸던 희미한 기억만 있을 뿐이죠. 더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에 자기 존재를 각인시키고자 부단히 애썼던 그였다는 걸 감안하면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이젠 그를 궁금해하는 이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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