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죽 쒀서 개 주는 일은 다신 없어야 한다"는 말처럼 많이 회자되는 것도 없지 싶습니다. 주로 이러한 이야기가 거론될 때면 다음과 같은 역행의 기억이 거론되곤 합니다.
4.19 혁명은 5.16 군사 쿠데타로, 80년 서울의 봄은 신군부 쿠데타로,
87년 6.10 민주항쟁은 6.29와 KAL기 참사 조작을 통해 또 다른 군부에게로 모두 귀결되었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문제로 삼는 출발점은 대체로 4.19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오래 전의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그 역행의 기억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안의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는 이미 인정되고 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왜곡된 지배세력의 의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바로 교육으로도 우리 스스로 격하시켜버린 동학이 그렇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과 비교할 때 규모에 있어서나 격에 있어서도 동학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규모로 보자면 파리를 중심으로 했던 프랑스 혁명과 달리 전국적이었으며, 그것도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보다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눈물이 나도록 안타까운 것은 동학 혁명이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지 못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결과로 끝이 났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성공한 프랑스 혁명과 미완의 동학 혁명... 이를 혁명이라 하지 않고 운동이라 지칭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주장입니다. (근대사적으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역행의 기억은 4.19이 아니라 1894년의 동학 혁명이 있던 시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우금티 전투 기록화(이의주 화백)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지금 우린 그때의 기억 이후로 다시는 그리되어서는 안 될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처절함으로... 이는 동학 혁명의 미완과 해방 이후의 상황이나 60년 4.19, 80년 5.18, 87년의 6.10에서 당한 역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보다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만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동학에 관하여 언급을 했는데, 이 노래를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이 산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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