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시절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문장론 수업. 당시 강의를 맡았던 교수님께서 강조했던 말하기 글쓰기의 중요성은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근거 있고 설득력 있는 표현의 능력이 왜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배우고 생각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이들이 넘쳐 나 보이는 요즘이라지만, 혼자 말하고 글 쓰는 것과 달리 대척점의 상대를 두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반박되는 내용에 재 반박하는 과정은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주장하는 바에 대해 논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쉽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장하는 근거와 상반된 주장이 상충되었을 때 이를 자신의 주장이 왜 더 합당하고 맞는지 설득하는 건 보통의 내공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니까요.
물론, 3자 입장에서라면 그런 상황이 그 주장하는 이들의 지적 깊이와 근거의 진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문제는 그런 좋은 토론을 접하기가 많지 않다는 거죠.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게 정설인 양 하는 세태라서 말이죠. 그만큼 원래의 뜻과는 다르다는 논란이 일어도 난상토론이란 말은 자주 회자되는 표현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돕니다. 1
그래서였을까요? 보기 드문 토론의 정석처럼 아니 주장과 논박 그리고 재반박을 논리적으로 주고받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진실로 접근하도록 하는데 좋은 토론으로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뉴스포차의 원전정책에 관한 토론은 (이렇게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생각될 만큼) 아주 좋은 본보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앞서 좋은 수업으로 기억에 남은 원자력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촛불 혁명으로 선출된 새로운 대통령이 공약 실천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탈원전 행보가 초미의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뉴스포차의 원전정책 토론은 10여 년 간 탈핵운동을 해온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와 탈핵 반대 성명에 동참해온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가 출연하여 박성제 MBC 해직기자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면서도 적절하게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 가면서도 한치의 양보 없는 논리와 지식을 앞세워 때로는 창과 방패를 서로 바꿔가며 품격을 잃지 않는 두 학자의 토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원전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잖아도 새로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행보로 찬반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죠.
특히 문재인 정부는 합리적 판단과 정책 결정을 위해 차반 진영을 배제한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으로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상황에서 혹시 참여하게 될지 모를 또는 추후 국민투표에 붙여질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참고할 만한 판단 근거로 아주 좋은 토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꼭 봐야 할 토론이다 뭐~ 그렇단 얘깁니다. ^^
참고로 이번 토론은 탈원전 정책에 대한 기본입장, 탈원전 결정의 주체에 관한 생각, 일본산 수산물의 안정성,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역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지의 여부, 우리의 원전은 지진에 안전한 지와 경제적이라고 이야기되는 원전 원가의 진실 그리고 재생에너지는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두 전문가의 공방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번 토론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기준의 중요성과 관점의 차이 그리고 그 두 가지가 결합된 자기주장은 결국 같은 사안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음 다시 한번 확인한 계기였습니다. 자칫 수단과 목적이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문장론 수업의 기억과 연결되어 살짝 무섭기도 했구요.
말하자면 모든 사람을 위한 기술이 아닌 특정 소수의 익을 위해 진실이 아닌 설득력 있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으면서도 선한 모습으로 주장하는 경우 사람들은 판단하기 어렵거나 바라는 바와 거꾸로 된 결과에 손을 들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랄까요? 무엇보다 그런 상황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 때 만에 하나라도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사고가 걱정이 아닐 수 없으니 말이죠.
주제와는 다른 얘깁니다만, 이번 토론은 대형 방송국 체제가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 준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뉴스타파와 같은 매체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며 적어도 당분간은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 ‘난상 토론’의 ‘난상’은 ‘亂想’도 아니고 ‘欄上’도 아니다. ‘난상(爛商)’이다. 爛은 ‘무르익을/문드러질 난[란]’이고 商은 ‘장사 상’ ‘헤아릴 상’이다.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이라고도 하는데, 장사하는 사람은 물건 값을 잘 셈한다는 데서 ‘商’에 ‘헤아리다’라는 뜻이 생겼다고 한다. ‘난상’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무르익게 헤아리다’라는 뜻이니 ‘난상 토론’은 어떤 사안을 두고 무르익을 만큼 헤아려 충분히 잘 의논함을 이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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