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에 대한 소고

생각을정리하며 2011. 4. 19. 14:28 by 그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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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아리랑은 흘러가는 음율처럼 때때로 그저 흥얼거리는 노래가락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어떤 감정을 느낀적도 없습니다. 그건 아마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대다수가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10년 전 쯤 읽었던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으로 부터 최근 읽게 된 님웨일즈(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우)의『아리랑』은 -보다 실제적으로는 김산(본명: 장지락)를 통해 님웨일즈가 집필한- 서로 다른 내용이면서도 어딘가 연결고리로 이어지면서, 그 아리랑에 대한 느낌이랄까요? 뚜렷하진 않지만 그 정서와 애환이 느껴졌습니다.

▲ 김산(본명: 장지락)과 님웨일즈(헬렌 포스터 스노우의 필명) 


아리랑의 유래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장과 학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근거나 자료로써는 몰라도 그 내용들은 인간애적 신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 이야기 하는 바가 아리랑에 대한 이론과 개념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느낌에 대한 표현이며, 그것을 정리하고자 할 뿐입니다. 말하자면, 아리랑이라고 하는 느낌의 연관성과 그 자체의 진실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짜맞춘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만, 나를 향한 내 마음의 진실한 그 느낌을 남기고자 합니다. 인위적인 것이라면 이렇게 정리할 필요도 없겠지요.

어느 명제든 각기 지닌 성격과 특징 등 그 내용은 다를지라도 시작에서 전파와 파생이르는 그 흐름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리랑도 그 유래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그대로의 음율과 가사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살펴보면,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는 듯 보여집니다. 그러나 아리랑이라고 하는 이름과 오묘하게 연상되는 느낌으로써의 애환이나 정서, 한(恨) 등 은 어딘가 또다른 무엇이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뚜렷하진 않다고 했지만, 확신을 갖게 하는 그 느낌이란 명확하지 않은 속에서 확실한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 고통스러움과 아픔, 절절하고 애달픈 사연을 담고 있으면서도 스러지지 않는 알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유래도 각기 다르게 이야기 되고, 지역 마다 변형된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내포된 의미와 끊길 듯 끊기지 않는 아리랑의 생명력. 그것은 유연함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람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그렇습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어 만들어지는 인간애...

▲ 김산과 님웨일즈의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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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본명: 장지락, 일제감정기, 중국을 무대로 활동했던 조선혁명가들의 현실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의 삶을 통해 서술되고 있는 『아리랑』은 인간의 모든 활동이 가져올 결과와 의미를 한마디로 그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에서 질곡의 고개처럼 표현되고 있는 아리랑의 주제와도 일치합니다. 그렇게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 연유가 익숙해진 노래 가사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의 상호적 관계와 영향으로 서로 연결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에 의해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래로 『아리랑』의 연결고리는 아리랑이 지닌 성격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리 소문없이 퍼져가고, 연결고리의 파생과 전파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와 관련한 저의 생각은 리영희 선생님께서 회고했던 『아리랑』의 기억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확실한 근거로 남을 것 같습니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회고했던 『아리랑』과 관련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정확하게 단정은 할 수 없지만, 그 당시 웬만한 지적 호기심과 사상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그 책이 오랫동안 소리없이 돌려가며 읽힌 것으로 미루어, 『아리랑』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드물었고, 따라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1960년대에는 대체로 나의 동년배들, 즉 일제 때 중학교를 다녀 일본어가 자유스러운 이들 사이에서 읽혔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나의 일본어판 『아리랑』은 해방 후 세대에게도 알려져서 읽히게 되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하에서 유신독재 체제에 맞서 싸우다 옥살이를 하고 나온 대학생들 사이에서 애독서가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징역 생활 동안, 일본어로 된 사회과학 서적을 읽기 위해서 초보적 수준의 일본어를 익혔다. 김지하, 김정남 등을 비롯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손을 도는 사이에 『아리랑』은 어느새 헌책이 되고 말았다. 1970년대 중엽의 일이다. -중략-

그러던 어느 때인가, 나에게서 한 번 나간 책이 다시는 돌아오질 않았다. 팔도 어느 곳, 어떤 사람들 사이를 돌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소식이 끊긴 채 1980년대가 되었다.

이제는 잃어버린  것으로 단념하고 있던 『아리랑』이 상상치도 않았던 작가 박경리 씨가 보낸 인편으로 주인을 찾아 돌아온 것이다. 소식 없이 집을 나갔던 자식이 돌아온 기쁨이었다. 책은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박경리 씨는 그 당시 대하소설 『토지』의 후반부를 세상에 내놓고 있었다. 김산과 같은 시대의 일제 식민지하 조선인의 운명을 그린 그의 작품이 그야말로 『임꺽정』이후의 한국문학사상 초유의 대작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나의 『아리랑』이 다른 이도 아닌 박경리 씨에게까지 갔다가 돌아오게 된 것을 안 나는 무척 반갑고 만족스러웠다.

그 후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박경리 씨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작품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히, 중국과 만주에서의 전투적인 독립운동가 · 혁명가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아리랑』은 고결한 낭만주의적 인텔리 혁명가 김산이 이 땅에서 다하지 못한 유지의 일단을 대신 이룬 셈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와 김산의 『아리랑』을 특별한 이유없이 도서관에서 같은 날 빌려왔었는데, 리영희 선생님께서 회고한 그 박경리 선생님과의 일화 내용을 알게 됨으로써 아리랑의 인과적 연결고리를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묘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김산의 
『아리랑』이 아리랑이라고 하는 속성과 연결되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아리랑이 처음 씌여진 건 님웨일즈에 의한 영문본이 처음이며, 일본어 번역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고 마침내 한글로 변역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번역된 내용은 역자(송영인)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마치 김산이 직접 이야기 하는 듯 매끄럽게 읽혔습니다. 이는 최초 한글을 모국어로 하는조선인 김산으로부터 전해들은 님웨일즈의 탁월한 글솜씨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인간애라고 하는 아리랑의 근본적 의미가 서로 통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한겁니다.


스쳐지나치듯 그저 입에서 흥얼 거렸던 아리랑이,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과 님웨일즈를 통해 서술된 김산의 아리랑을 거쳐 저에도 아리랑은 이제 한의 정서와 애환, 그 질곡의 고개를 너머 퇴색하지 않는 이름이 된 느낌입니다. 마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또는 "유심일체" 와 같은 깨달음 처럼...

그렇게 의미를 되새기며 아리랑을 자연스럽게 흥얼 거리 듯 불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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