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하나를 하려고 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 과정은 실제 하고자 하는 그 행위보다 더 길게 마련이다. 그 준비 과정은 대부분 나로부터 파생된 것이지만, 때때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 괜한 짜증이나 분노가 치밀 때는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도대체가...
블로그에 글 하나 쓰려다가 새롭게 확인한 어떤 사실로 인하여 그 마음가짐까지 흐트러지고 말았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돈 놓고, 먹고 먹히기"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필연처럼 강요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생각하고 사는 이도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그게 그것을 더욱 증명하는 꼴이 되고 만다. 얼마나 당연하면... 젠장.
며칠 전 채사장 강연을 듣고 왔다. 채사장은 강의에 앞서 그날 자신이 강의를 하게 된 배경을 잠시 설명했다. 그날 강의를 주관했던 (지자체 산하기구인 무슨 콘텐츠~라는 명칭이 들어간) 모 기관으로부터 강의를 의뢰받았다고.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그 명칭에 걸맞은 콘텐츠와 창의적인 스타트업 혹은 창업이 인문학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강의를 준비해야 했을 것이라고.
그 주문에 대한 채사장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그 기관으로부터 주문받은 내용은 그렇게 서두에 그대로 걸어둔 채 소설 이방인과 실존주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부제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당신에 대하여"였다.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철학적 탐구의 시작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을 향해 채사장이 물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물음에 간간히 제시하는 참석자들의 답변이 있긴 했지만, 그럴듯한 답이라고 생각된 것은 없었다. 나 역시 채사장의 질문에 답을 떠올려보았으나 묘연할 뿐이었다. 쉬운 답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어떤 면에서 그 질문은 철학 사조로써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우매한 질문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을 좀 하는 이들이게 이보다 더한 의미 있는 질문도 없다. 그러니 철학적 탐구의 시작이었다고 회자되며 몇 천년을 이어 학문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일 테고.
그래서 그랬을까? 지난 추석 모 신문사 칼럼에서 기고자는 "들어오는 질문에 반문을 제기하라"고 했고, 급기야 그는 자신이 한 그 주문을 그대로 실천이라도 하듯 대놓고 "칼럼이란 무엇인가?"냐고 되물으며 칼럼의 글을 맺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것은 그 글의 파장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구든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나 그것이 무의식 속에 일상에서 행했던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충격을 받게 되어 있다. 내가 놀란 건 나 역시 사람들의 반응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글쎄, 그 반응 역시 애벌레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상징의 세상 속에 묻혀 사는 사람들. 나도 너도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착각하며 산다. 아니 이 질문을 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 아니 다행이라는 말이 합당하긴 할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까?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법칙은 우리 인간을 기준으로 한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뫼르소는 그 법칙을 이해하지 못(안)했다. 그가 주인공인 책의 제목은 이방인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뫼르소는 이 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뭐라고 생각했을까? 그 책을 쓴 까뮈는?? 그의 친구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샤르트르는?? 그리고 채사장은??!
어두워진 이 시간, 갑자기 이곳이 낯설다. 아니 난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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