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밤엔 달이 뜹니다. 먹구름이 끼면 비가 내리죠.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 신이시여~!! 하면서...
현대 과학기술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이러한 우리의 직관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얘길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또 아는 걸 말하고 있느냐~ 그걸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그게 문제죠.
언젠가 짙은 먹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태양 빛을 보며 저는 감탄했습니다.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신비로움이 온 마음을 다 사로잡았고 그건 인간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신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느낌 그대로 이어왔다면 저는 어쩌면 종교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반동이 일어나는 건 꼭 어떤 계기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기억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어느 날 다시 보게 된 이전의 하늘과 비슷한 현상을 마주하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문득 의문이 들었던 겁니다.
나는 왜 저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이유와 원인을 따져봐도 알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답을 얻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젠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배경이나 조건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론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진 그 생각은 한마디로 기준(Canon)이라는 것을 말이죠.
A라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A가 될 수 있었을까 경이로워했다.
B라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B가 될 수 있는가 의아해했고 놀라워했다.
C라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C가 될 수 있느냐며 이건 기적이라고 했다.
주류는 현재형이지만 미래형일 수는 없다는 저의 생각은 중심부가 기존 가치의 보루 일지는 몰라도 창조적 공간이 될 수 없다고 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과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기준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선생님께서 변방이 미래 주역이 되는 전제로 제시하신 현재의 중심부에 대한 동경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처럼 그 기준이 불변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려야 가능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기준은 나를 옥죄는 형벌일 뿐일 테니까요. 마치 중심부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한 변방이 그 중심부보다 더한 교조적 공간이 되는 것처럼.
정해진 건 없어도 순서는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나고 나서 원인과 결과를 말하듯.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통과의례라고 자위하고 싶은 겁니다. 그게 길어도 너무 길다고 자책 아닌 자책하는 자신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부질없는 동경을, 때론 한 줌도 되지 않는 설익은 몸짓으로 으쓱해하다가도 벽에 부딪혀 나자빠지고 마는 나약함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땐 지금을 인생의 한 과정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하늘에서 굽어 본다고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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