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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촛불 무혈 명예혁명은


화평론가 김갑수 씨는 우리는 망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이미 엄청난 사건사고가 터지고 사면초가에 이르렀음에도 각자 각자에게 직접적으로 느끼질 못하다 보니(이 또한 먹고사는 문제로 인한 여유 없음이 원인이었다고 봅니다만) 이렇게들 착각한다고 쓴소리를 했었습니다.


... 그렇게 직접적으로 와 닿질 않으니 "그래도~ 우리 한민족은 저력이 있잖아" 따위의 소리를 한다. 망했는데... 이미 망했다고!!"


왜 헬조센인가? 왜?!!

지금 만나고 싶은 분, 문화평론가 김갑수


그가 이렇게 일갈했던 건(몇 차례 이전 포스트에서 언급했습니다만,) 그저 바라보는 3자의 입장으로 물 건너 보듯 현상을 마음 편하게 서술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의 말은 그만큼 절박했던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국민들이 각성해야 된다는 간절함의 표현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바로 2015년 11월 5일(이번 정의당 대표가 된 이정미 의원이 진행했던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테라스에서였습니다.


그러니까 촛불 혁명이 일어나기 약 1년 전입니다. 갈대로 간 적폐들의 막장이 끝장을 보여주던 그때 헬조센이란 말이 어둠 속 짙은 안개처럼 회자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기였습니다. 그 상황이 어떠했는지 그 시기를 거쳐온 이들은 몸서리 칠만큼 떠올리기조차 진저리 쳐지는 기억입니다만...




시작부터 부정선거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고,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로 시작된 각종 사건사고는 90년대 중반 김영삼 대통령 시절을 방불케 했을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인사파동, 메르스 사태, 민간인 사찰 논란, 성완종 리스트, 국정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 개성공단 폐쇄, 가습기 살균제 사고, 보육대란, 테러방지법 논란 등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지만 불거지는 문제에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무슨 왕정시대의 왕처럼 그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라는 반복되는 말 뒤에 "일벌백계를 하겠다",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 "엄단하겠다", "철저히 수사하겠다"만을 붙여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 스스로 책임지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더욱이 명명백백하게 자신과 주변부의 치부가 드러나도 모르쇄로 일관하고 핵심과는 무관한 엉뚱한 사안으로 몰고 갔습니다.




경제 정책은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있는 자들을 위한 줄푸세로 없는 이들의 고통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허울로 복지 사각지대는 늘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수가 정점을 찍었죠. 그럼에도 누군가 박차고 나가 저항하고 항거해도 쉽사리 힘이 모아지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김갑수 씨가 망했다고 한 것은 이러한 전후 맥락에서 였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얼마 후인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어르신은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에 쓰러지셨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결실은 언제나 극소수의 몫이었지만 당연하다는 듯 묵묵하게 자신들의 할바를 다했던 우리의 자화상은 적폐들에겐 온순하고 말 잘 듣는 개 돼지로 비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고 봅니다. 그런 모습들 속에 실제 노예근성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물론 지금에서 볼 때 그건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 현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한민족의 저력"이란 단순히 수사가 아니라 50~30년 사이마다 이 땅의 민초들이 들고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동학농민 혁명에서, 나라를 빼앗긴 후에도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 독립 저항 운동과 제주 4.3, 4.19 혁명, 5.18 광주 항쟁, 87년 6.10 항쟁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의 진보는 그렇게 이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나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를 우러러봐야 하고 우리는 따라야 하는 후진 나라의 복종하는 국민임을 끊임없이 주입받았음에도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 인류적 혁명의 새로운 전기를 이루어 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법대 한인섭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촛불혁명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촛불혁명이 무혈 명예혁명이 될 수 있었던 배경]


-식민지 하라면 3.1 운동처럼 총으로 수만 명이 죽었을 것이다. 그런 식민지 체제를 돌파해 나왔다.


-군사 독재하라면 5.18처럼 몽둥이와 총으로 수백 명이 죽었을 것이다. 그런 군사독재를 깼다. 군대를 시내에 불어넣는 계엄 체제를 1987년에 종식시켰다. 박근혜가 동원할 그런 정치 군대는 없다.


-그래도 최루탄이 난사될 수 있었을 텐데, 이한열 거쳐 DJ정부 하에서 최루탄을 종식시켰다. 시내 시위에서 쓸 최루탄이 없다.


-그래도 물대포 난사될 수 있었을 텐데, 백남기 어른의 희생에 대한 분노가 축적되어 물대포를 쏠 수 없었다. 박원순 시장을 뽑으니, '물' 공급도 안 해준다.


-그래도 차벽 세워 집회시위 공간을 폐쇄하였을 텐데, 법원 판결로 점점 공간을 넓혀가서, 청와대 앞까지 시민 놀이터를 확장했다.


-시위 지도부, 시민들이 현명하게, 즐기면서, 참아가며, 잘 대응하여 유혈 없이 혁명될 축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2016년의 이전 시대에, 총, 칼, 몽둥이, 최루탄, 물대포, 물을 차례차례 사라지게 한 선열과 지사들의 노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그 희생, 그 헌신의 배경도 곰곰 생각하고 기억할 일이다.


-영국 1688년 명예혁명을 무혈혁명이라 찬양한다. 그런데 17세기 영국은 혁명과 반혁명이 연거푸 일어나며, 왕당파도 죽고 공화파도 죽고... 피와 피의 악순환 끝에, 절대왕권파가 몰락하면서 비로소 무혈 명예혁명이 관철될 수 있었다. 갑자기 1688년에 이르러 영국민이 성숙해서 그런 것 아니다.


-촛불 무혈 명예혁명은, 100년에 걸친 탄압 저항과 유혈 희생의 바탕 위에서 쌓아 올린 탑임을 기억하고 고마워하자고요. 그리고 그런 100년의 자부심으로, 적폐 청산 잘 해내고, 좋은 나라 알뜰하게 만들어가자고요.



이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개 돼지로 본 그들은 착각을 해도 너무 심하게 오판을 한 겁니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그 후예를 당당하니 창피한 줄도 모르는 그들은 정신 차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으니... 그저 미미한 몰상식으로 남아 비상식의 전통을 이어받긴 하겠지만 이제 그들의 완전한 몰락도 그리 멀지 않은 거죠.


갈 길이 아직 멀다고 생각하면서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 이상의 세상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끌어낸 촛불 혁명이 가슴 벅찰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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