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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 9

관점을 생각하면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누구보다 관점을 중시합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좀 복잡한 편입니다. 아니 복잡합니다. 근데, 정작 그 관점을 생각하면서도 왜 그런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에 불현듯 갖게 된 의문입니다. 왜 관점을 생각하게 되고, 왜 그리도 중요시하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니 인간에게서 관점이란 발붙이고 사는 세계가 3차원인데 비해 (딱 떨어지는 건 아니다 하더라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시야에 상이 2차원으로 맺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당면한 조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각도 관점에 한정되어 종속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글쎄요~ 이것도 그 한계를 벗어날 경우 확장되는 범위의 규모에 따라 역시 관점의 차이는 발생하겠지만… 어쨌든 그 서로 다른 관점 역시 한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3

※ 본 포스트는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1"과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물론, 더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겁니다.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무한대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수(數, 手)를 본다고 본 여러 가능한 사항들은 결국 그 자체로만 남는다는 것이 사람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다 붙인 들 그런 건 해결되지도 않을뿐더러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정한 관계 속에서 상호적 신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사람다운 게 아닌가?라고 말이죠. 어쩌면 그래서 진짜 아는 건 실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數, 手)를 언급하는 데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을 빼놓고..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며 느끼는 두 개의 세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은 어떨지 모릅니다. 모든 생각과 느낌은 원초적으로 오로지 혼자만의 느낌입니다. 그것도 오래된 기억이죠. 그렇다고 다른 이들은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또 경험했다 하더라도 생각하지 않았(못했)거나 그럴만한 여건이 못되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혹, 시간과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환경을 경험하며 느끼게 되는 두 개의 세계에 대해 먼저 이렇게 말을 꺼내면 느낌이 오실까 모르겠습니다. 살았던 곳을 잠시 떠나 조금 멀리 떨어진 다른 장소에서 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만들어졌을 때 간혹 떠올리게 되는 과거의 내 모습 또는 그 속에서 있었던 관계들에 대한 기억. 여기에 좀 더 보태면 그렇게 새롭게 살아가던 곳에서 다시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

그냥 2017.03.13

대통령 탄핵에 이른 그 과정에 관한 소고(小考)

오래도록 지속될 이 전율과도 같은 느낌. 떨어지는 언어력으로 이를 적확히 표현할 수 없음이 그 허기짐을 더하게 만듭니다만, 당분간 그 감흥은 계속 이어질 듯합니다. 그게 더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임에도 선고가 내려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떻게 잘못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지 떨리는 마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전원이 일치된 판결을 내릴 것이란 사실은 적잖은 분들이 예상한 바였지만, 치가 떨릴 만큼의 비정상들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뒤틀린 굴절된 시간과 그 어둠 속에서 자연스럽게 투영된 부정의 마음으로 오히려 그 반대 상황들을 지레 당연하다는 듯 그러려니 해왔기에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

타임라인 논평 2017.03.11

내가 잘 나갔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

가끔 상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뭐~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내가 잘 나갔으면 좋겠다는… 그러나 이런 생각, 부질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건 그야말로 함정입니다.또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가 정말 잘 나갔다면 많은 이들을 피곤하게 했음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좋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죠. 지금과 같은 겸손치 못한 마음가짐에서는 더더욱!! 이런 생각 끝에 그 상상은 도돌이표가 되어 다시 제자리로 향하곤 합니다. "그래 내가 잘 나간다는 건 꿈도 꿀 일이 아니다""내게 그런 일은 없다""다른 이들도 모두 잘 나가고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면 모를까!!"? 이런 생각이 외려 속 편하죠!!! 완전 득도한 건가요? 흐~아니 실제 그럴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인지 아..

그냥 2017.01.10

놀라운 사람들의 모습을 한 번에 만나는 "People are Awesome 2016"

매일 운동과 글쓰기 등을 이어가고 있는 제겐 확고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비교하지 말자! 즉, 대단한 누군가를 보면 경의를 표하면 되는 것이고 비교는 이전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나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확고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그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는 뭐~ 저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험한 이들이라면 대부분 그럴 테니까요. ㅎ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무언가를 대단히 잘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놀라움과 심지어 숙연함을 느끼면서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이 왠지 작게 느껴지는 건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 역시 주어진 배경에 따른 영향이라는 것을 배제할 수도 없겠습니다만. 소셜네트워크에서 활약하는 많은 이들이 있습..

미래엔 현재를 야만의 시대라 할지도 몰라

살아온 환경과 그 배경을 통한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과연 이를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이가 있을까요? 상상의 범위를 벗어난다면 모를까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학에서는 "인간 행동과 사회 환경"을 가르치기도 하죠.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역시 알 수 없는 미래에 그 시대를 살아갈 이들이 지금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고 하는 물음 때문입니다. 과거와의 이해의 차는 현재가 미래보다는 분명히 덜할 겁니다. 기술을 통한 환경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음으로써 지금으로부터 과거 100년 전을 판단하는 것보다 100년 후의 미래에서 지금을 판단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죠. 이미지 출처: investhought.com 사실 현재 우리는..

믿음에 대한 어느 목회자의 고백 1

어떤 사실을 정의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개념과 정의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듣고 보고 알게 되는 순간 아는 것이 아는 게 아님에도 그런 것(그것이 맞는 것 또는 옳은 것 혹은 진리와 같은 것)으로 착각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어쩌면 대부분 그런 줄 모르고 평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제시한 파란 알약을 먹었을 때처럼 말이죠.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넨 두 가지 색의 알약은 가상이지만 평화의 상태로 머무느냐 아니면 현실을 인지할 수 있지만 고통스러운 적나라한 세상을 살게 되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생각하기에 따라서, 또는 그저 누구나의 생각 ..

용역과 인공지능 그리고 멸망

용역... 언젠가부터 참 많이도 들어온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지닌 뜻이 노동과 다르지 않다는 걸 얼마나 알고들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워낙 용역과 관계된 일들이 많은지라 대략 감은 잡고들 있겠지 싶지만 말이죠. 어감으로 보자면 '노동'이란 순수한 느낌인 반면, 용역은 왠지 순수한? 노동을 사고파는 느낌이랄까요? 좀 품격(?)있게 표현해서 경제용어적인~ 뭐 그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노동이라는 것이 사고파는 속에 내재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우선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그 노동에 대해 가치를 얼마나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부실한지 안정적인지 결정짓는 토대가 된다는 건 언급해 둡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peoplepower21.org 참여연대 노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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