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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매 년 이맘 때 쯤엔 늘상 생각하게 되는 것이기도 한데...

저는 개인적으로 시간의 흐름이란 우리 인식 속에 있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변화하지 않느냐?! 늙지 않느냐?! 낡는 것도 그렇고... 등등 시간 흐름을 증명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단서는 수없이 많지요. 


그런데, 그러한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동일시 하는 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시간의 흐름 없이도 변화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걸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의 한계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구요.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보편적 사고 속에 잠재적 의식까지 그렇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연말이면 마무리 해야한다는 숙제들과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그 하루 이틀 사이에는 매년 통과의례와도 같이 어떤 의식 같기도 한 다짐들을.. 그 시간 안에 꼭 해야만 한다고 하는 의무감이.. 무슨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건 그 중에서 한 해를 보내는 것에 의한 마무리 짓고자 했던.. 그간 가슴에 담아 두었던 한가지... 제목에서 언급한 우리집 고양이 바론에 대한 이야깁니다.








바론... 4년을 함께한 고양이입니다. 

고양이와 함께할 줄은 생각 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렇지만 운명과도 같은 인연이라 생각이 들 만큼 바론은 좀 특별했습니다. 물론, 그 특별함이 바론과 함께하면서 언제나 느껴졌던 건 아닙니다. 바론의 목에 걸어 준 방울만이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고양이라는 징표였을 뿐... 하얀 털에 둥글고 파란 눈의 어딘가 귀티가 났던 바론이 터키시 앙고라라는 걸 알게 된 것도 1년은 족히 지난 후였을 만큼 한편 무관심했습니다. ㅠ.ㅠ 


"바론"은 약간의 실수가 있긴 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고양이의 보은에서 연상된 이름이 떠올라 부르게 된 호칭입니다. 그렇게 불러 줌으로써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듯 언젠가부터 바론은 보이질 않다가도 그 이름을 부르면 바로 와서 꼬리를 흔들곤 했습니다.










시골 생활을 하는 까닭에 사방이 논과 밭이고, 그 외의 땅들은 온통 봄에서 여름 가을 동안은 푸르름이 가시질 않아 바론이 자유로움을 만끽하기엔 제격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바론은 우리 가족과 함께하면서도 반나절 이상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 날이 태반이었죠.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하기 좋은 동물이란 것도 바론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꺼려졌던 건 그 하얗던 몸의 털들이 언젠가부터 회색빛이 돌면서 왠지 가까이하기엔 멀게 느껴졌다는 것이 조금 그랬지만... 


바론도, 우리 가족도 일정 부분에 합의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구속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바론을 씻기려고 몇 번인가 시도를 했는데, 그 과정에 할큄을 당해 팔에 피를 본 이후로 바론을 목욕시킨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엔 그게 서로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되더군요.










먹을 사료와 물을 준비해 주면 알아서 먹고,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싶은 대로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부르면 바로 오는... 나중에 생각했지만 참 이름도 묘하다 싶었습니다. 바~로 온... 하고 부르면 바로 오는 바론이 바로 바론이라고...


도시에서 생활했을 땐 근처에도 못 갔을 아이들도 바론과의 교감을 통해 동물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자연스레 익숙해질 수 있었죠.


딸아이가 동시로 표현한 우리 고양이 바론!


그런데, 금년도 봄쯤의 일이었습니다. 포스팅하기도 했었는데... 며칠 보이질 않아서 사고라도 났나 걱정하다가 정말 그렇게 되었구나 생각했을 즈음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다시 돌아왔던 바론에 관한 에피소드...


인연(因緣)이란 이런 거지...


바론이 돌아온 이후 다행이라 생각하며 더 많은 시간... 아니 더 이상 헤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빨리 그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바론...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할 만큼 시간도 흘렀구요. 가슴에만 묻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글로라도 바론과의 이별을 기록하리라 생각했던 것을 이제야 옮기게 됩니다. 


이미 제 아이들은 바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바론이 좋아하던 간식과 함께 이별의식까지 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은 딸내미가 그때 그린 바론의 초상화라고 합니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가볍지 않게 사용되는 요즘이지만... 바론과 함께한 시간을 떠올려 보면 감히 반려라는 단어를 붙여 말할 수는 없겠다는 미안함을 갖습니다. 


이역시 나중에 들은 얘기... 아니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고양이는 세상을 떠나기 전 집을 나간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아마도 바론도 그런 것이 아닐까... 


바론이 보이지 않은 건 7월 마지막 주 즈음의 일입니다. 그때를 전후하여 며칠 이상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인가 불현듯 돌아와서 어딘가 몸이 아팠는지 또 한 삼사일을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다가는 약간의 사료를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러다가 기운을 좀 차렸나 싶었는데... 그렇게 다시 집을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이 떠나기 위해 찾아온 마지막 만남을 준비한 것 같았습니다.



▲떠나기 며칠 전의 바론.. 지금 보니 아파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ㅠ.ㅠ



2015년 한 해를 보내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바론과의 이별 인사를 이렇게 함께 합니다. 떠나보내는 사람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만... 


"잘해 주지도 못하고, 떠나는 마지막 모습이라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해 미안하구나..."라는 말은 다음의 저를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라도 더 이상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잘 가 바론... 

내가 사는 동안 잊지 않을게... 함께 했던 시간과 기억들...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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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리스트 hisa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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