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시적 관점도 일정한 관념을 지닐 연륜이 필요한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대의 아픔을 생각할 때 과연 어느 시점에 국한된 것이 아님은 그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시대 흐름에 대한 공통분모를 지닐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경제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나라 경제 파탄을 국민이 다시 살리겠다고 금과 은을 모으던 그때가 언제인지 아득한데도, 어제처럼 진하게 남는 건 그만큼 깊은 상처와 충격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건 그 시점에 터졌을 뿐 그런 상황이 전개될 개연성의 조건들은 그 이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통시적 관점은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20년 넘는 시간이 흘러 세기를 달리하고 있는 지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필연이었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좀 괜찮은 세상을 살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새삼 기대되는 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떠올려 보니 공교롭게도 그 이후의 20년은 정확히 반반씩 그나마 민주적이라고 평가되는 시간과 부조리를 더 강하게 떠올리게 하는 시기였다는 생각에 오묘하기까지 합니다. 정말로 생각해 보면 민주와 반민주 시기가 전후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이렇게 되기 위해 이 땅의 어지러움을 정리하라는 의미로 시간을 부여받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합니다.
사실 IMF 이후 10년이 그나마 민주적인 시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정확히 기존의 기득권과 반대 진영에서 정권을 가져왔던 것도 아니었으며, 그마저도 흔히 말하는 이나라 최초의 정권교체였다는 점은 민중의 기대를 수렴할 수 있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조건이었을 겁니다. 결과론적인 얘기겠지만, 이는 반동의 시기가 기다리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게 현실이 되어 헬조센이란 표현은 이후 10년의 시간을 대변하는 대명사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 YTN 해직기자들의 생계 보전을 위해 마련됐던 희망펀드가 6년 만에 공식 종료된다. 왼쪽부터 2008년 10월 6일 일시해직된 조승호, 우장균, 현덕수, 노종면, 권석재, 정유신 기자. 지난해 11월 27일 대법원 판결로 현재 권석재, 우장균, 정유신 기자 3명이 YTN에 복직한 상태다. (사진=YTN노조)
그 반민주 10년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 2008년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낙하산 사장 인사에 반대하던 YTN 노조 집행부 6명의 해고로 시작된 방송과 언론의 사유화였습니다. 이후 진행된 MBC를 비롯한 KBS에서 행해진 일련의 사태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방송과 언론의 사유화가 진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건 왜곡된 힘으로 역행한 그 흐름은 쉽게 되돌릴 수 없음을 너무도 뼈저리게 확인했기 때문일 겁니다.
또다시 정권이 교체된 지금, 방송과 언론의 사유화 신호탄에서 이를 앞장서 거부한 가장 상징되는 이름 노종면 해직 기자의 YTN 사장 도전은 그 실현 가능성을 떠나 적잖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는 그의 말대로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케 하는 상징적 선언과 같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노종면 기자가 YTN 사장 공모 참여를 결심하며 YTN 노동조합과 측근에게 보낸 글 전문입니다.
3,171일.
첫 직장,
꼬박 6개월 동안 월급 한 푼 못 받으면서도 지켰던 회사,
제게 기자로 살게 해 준 언론사 YTN.
바로 그 YTN으로부터 해직 통보를 받은 지 삼천일이 넘었습니다.
9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복직의 꿈을 접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한순간 복직을 의심해 본 적 없습니다.
정권과 결탁한 이들이 강탈해 간 YTN 기자라는 직함을 되찾는 싸움,
그 싸움의 끝이 복직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삼천일 넘게 지켜온 복직의 꿈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YTN 사장 공모에 입후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결심으로 복직 투쟁에 함께 해오신 분들께서 실망을 하게 될지,
본질이 같은 것으로 이해해 주실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이해를 구합니다.
결심을 한 이상 최선을 다해 뜻을 이루려 합니다.
YTN 외부는 물론이요 내부에 있는 그 누구로부터도 조력받지 않고
오로지 제 의지와 힘으로 뜻을 이뤄내겠습니다.
권력에 줄을 댄 적도 없고
노조의 요청을 받거나 상의한 적도 없습니다.
일부 해직자의 권유를 받고 혼자 고민해 담담히 결심했습니다.
이번 도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YTN에서의 제 소임이 끝났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사장 떨어져도 복직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다수라면
저는 지금 당장 결심을 철회하겠습니다.
YTN 사장, 배수의 진도 없이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당부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만약 뜻을 이룬다면 YTN 공정방송 투쟁의 승리로 규정하고
YTN의 개혁, 진정한 통합과 도약을 위한 도전에 나서겠습니다.
그때 동지들이 9년 동안 펼치지 못했던 지혜와
벼려두었던 용기를 분출시켜 주셔야 합니다.
동지들의 지혜와 용기가 제 결심의 원천입니다.
더 드릴 말씀이 적지 않지만
YTN 사장 선임 절차가 끝날 때까지 말을 아끼겠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시대가 열렸습니다.
YTN 사장 공모 역시 촛불이 요구한 결과입니다.
저의 결심이 촛불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지
쉼 없이 자문하며 공모 절차에 임하겠습니다.
동지들과 상암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그날을 그립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2017년 6월 11일 양평 새꽃마을에서,
동지들께 늘 고마움을 안고 사는 노종면 올림
지금의 방송언론의 지형은 과거 10년 전과 비교해 많은 부분에서 변화하였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했습니다. 흐름도 그랬고, 그 흐름을 부추긴 왜곡된 힘의 뻘짓은 그 흐름을 한 층 더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대안 매체가 공중파와 종편과 맞서 결코 밀리지 않을 수 있던 것도 그러한 맥락 속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후원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할 즈음 자발적 후원회원 1만 명을 목표로 했던 뉴스타파가 현재 4만 명에 이르고 있다는 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그런 점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반민주 10년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상징되는 시대적 변혁의 흐름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좁아질 수밖에 없는 방송과 언론의 입지와 왜곡된 언론방송에 의한 몰락이 시기적으로 맞물렸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필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를 노종면 기자가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뉴스타파의 초대 앵커였고, 국민 TV를 공중파에 버금가는 품질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일파만파라고 하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구독자 중심의 새로운 언론매체의 태동을 이끈 장본인이니까요.
이미지 출처: 방송기자연합회
그럼에도 노종면 기자가 YTN의 사장 공모 도전하는 이유와 그런 그를 응원하고자 하는 건 YTN과 같은 방송시스템이 아직은 그만큼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의 자질이 반민주 10년 간의 기성 방송사 사장 그 어떤 누구보다 100배 그 이상 더 나을 것이라는 건 너무도 자명한 얘깁니다.
다만, 좋은 세상이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갖는 바램은 올바른 방송과 언론으로써 역할이 진실에 근거한 사건 사고 보도는 당연한 것이겠으나 그가 YTN의 사장이 된다면 단지 그것만이 방송과 언론의 사명이라는 직업적 입장에 머물지 않았으면 합니다.
힘없는 이들이 없는 힘을 모아 응원했던 건 결국 좋은 세상을 원했기 때문이었음을 결코 잊지 않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새로운 방송과 언론의 역할을 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으로 공기마저 달라졌다지만 흔한 말로 아직 적폐들이 지뢰밭처럼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종면 기자의 YTN 사장 도전이 그만큼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노종면 기자가 YTN 사장이 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기회는 이번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방송언론의 지형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경우라도 실망할 일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의 역할은 그것이 아니라도 차고 넘치거든요.
물론, 이번 그의 도전이 성취로 이어져 그것이 목표가 아닌 그 출발점에서 좋은 방송으로 세상도 좋게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 할 수 있길 진심으로 충심으로 빌고 또 빌며 열렬히 온 힘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노종면 기자의 YTN 사장 공모 소식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JTBC 손석희 사장이 MBC 사장으로 취임한다면 어떨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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