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과 워터게이트

생각을정리하며 2010. 11. 10. 13:37 by 그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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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원칙이 대포폰!?? 그게 공정사회??

 

청난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별일이 아닌 듯 치부되는 분위깁니다. 일명 대포폰을 그것도 불특정 국민을 상대로 국가 통치권력 중심부에서 불법적 사찰에 사용했다는 건 미국 닉슨 대통령이 사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족지혈로 만들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나라가 들썩여도 부족할 판에 참 알 수 없는 건 정말이지 이 나라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는 겁니다. 


대포폰이 뭐가 대수라고 왜 이렇게 말을 하느냐... 

그래서 그 따라 하기 좋아하고 선례로 늘 첫째로 꼽는 미국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대포폰 얘기에 자주 거론되는 미국에서 벌어진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어떤 내용이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http://www.historyplace.com/unitedstates/impeachments/nixon.htm, 일부편집수정

▲ 워터게이트 사건이 촉발된 당시 워터게이트 호텔 전경

 

 

아래는 1972년부터 75년 사이 미국의 일명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지 형식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닉슨과 공화당 행정부의 불법 활동이 폭로되어 1975년까지의 공방 끝에 대통령이 사임하게 된 정치 스캔들.

 

이 사건이 촉발된 건 1972년 6월 17일 워싱턴 D.C에 있는 사무실과 아파트 및 호텔 등으로 사용되는 다용도 건물인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한 5명의 남자가 체포되면서부터 이며, 그들이 체포된 지 며칠 만에 이 5명과 전 백악관 보좌관 E. 하워드 헌트 2세 그리고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 법률고문인 G. 고든 리디는 가택침입죄와 도청 죄로 고발됨.

 

1973년 1월 컬럼비아 특별구 미국 지방법원 수석판사인 존 J. 시리카 판사가 이 7명 모두를 심리했는데, 이들이 체포된 때부터 재판받을 때까지의 몇 개월 동안 닉슨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행정부 내에서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를 비롯한 언론에서는 집요하게 닉슨 행정부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기사를 연이어 발표.

 

1973년 2월 상원의원인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민주당 의원 샘 J. 어빈 2세를 의장으로 한 상원 대통령 선거운동조사 특별위원회(어번 위원회)는 텔레비전 공청회를 시작했는데, 어빈 위원회는 백악관과 선거위원회 요원들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언을 끌어냄. 그러나 닉슨 대통령이 은폐 과정에 직접 연루되었다고 고발한 증인은 딘뿐이었음.

 

1973년 3월 23일 선고공판에서 시리카 판사는 피고들 가운데 1명인 제임스 W. 매코드 2세의 편지를 읽었는데, 그 내용은 백악관이 워터게이트 침입사건과의 연루된 것을 감추기 위해 '은폐'를 지휘했다고 고발하는 것이었고, 매코드 자신도 7명의 피고인들이 백악관으로부터 유죄를 인정하고 묵비권을 행사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고발. 또한 매코드는 재판 중에 증인들이 위증을 했다고 주장.

 

다시 소집된 대배심원들 앞에서 젭 스튜어트 매그루더(전 연방정부 법무장관으로 재선위원회 위원장인 존 N. 미첼의 보좌관)는 자신의 이전 증언, 즉 가택침입은 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는 등의 발언을 번복해 자신은 미첼과 대통령 법률고문 존 W. 딘 3세의  회유에 넘어가 위증했다고 함.

 

1973년 4월 17일 백악관이 연루된 것이 명백해지자 닉슨은 자신이 새로운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 그러나 로널드 L. 지글러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정부 부처가 그때까지 발표한 것은 모두 무효라고 선언.

 

1973년 4월 30일 닉슨은 공식적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참모들의 행동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고문인 H. R. 홀더먼, 존 에일리크먼, 딘, 법무장관 리처드 G. 클라인딘스트의 사표를 수리. 그러나 이때까지도 닉슨은 정치적 정보 공작이나 범행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 그리고, 같은 날 엘리엇 L. 리처드슨을 클라인딘스트 대신에 법무장관으로 임명. 그 후 리처드슨은 하버드대학교의 법학교수 아치볼드 콕스를 워터게이트 사건 담당 특별검사로 지명. 그러나 그 해 5월 들어 조사의 중심은 상원으로 옮겨짐.

 

1973년 7월 16일 전 백악관 직원 알렉산더 P. 버터필드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한 대화 내용들이 비밀리에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다고 폭로.

 

1973년 7월 23일 콕스와 어빈 위원회는 즉각 문제의 테이프들을 증거물로 제시할 것을 요청했으나 닉슨은 행정상의 대통령 특권과 국가안보를 이유로 이를 거부. 그러나 시리카 판사가 그 테이프들을 넘겨달라는 영장을 닉슨에게 보낸 후 10월 미국 상소법원이 그 영장을 확인하자 닉슨은 더 이상 대통령의 다른 문서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문제가 된 테이프의 서면 요약을 제출할 것을 제안. 


콕스가 그 제안을 거부하자 닉슨 대통령은 10월 20일 법무장관 리처드슨에게 그 특별검사를 해임하라는 명령을 지시함. 리처드슨과 법무차관 윌리엄 D. 럭켈샤우스는 그 명령을 이행하는 대신 사임했고 콕스는 그 후 임시로 임명된 법무장관 대리역 법무차관보 로버트 보크에 의해 해임 되었음.

 

1973년 12월 8일 빗발치는 여론이 거세지자 닉슨은 12월 8일 테이프를 내주게 되는데, 시리카의 영장에 명시된 9개의 테이프 중 7개 만을 제출. 이에 대해 백악관측은 다른 2개는 원래부터 없었다고 주장. 7개 중의 하나에는 지워진 부분이 있었는데, 나중에 전문가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연한 사고로는 결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짐. 


1974년 초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의 전 백악관 보좌관들이 기소되거나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 이로써 워터게이트라는 용어 자체는 본래 가택침입뿐만 아니라 선거자금을 받고 정부가 특혜를 준 사실, 1972년 선거운동에서의 '부정한 공작' 백악관에 설치된 초법적 정보기구 등을 포함한 권력의 여러 가지의 부정행위를 의미하게 됨.

 

1974년 5월 14일 백악관에 설치된 그 정보기구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국방부 자료들을 유출한 전 국방부 직원 다니엘 엘스버그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한 정신과 의사의 사무실을 불법 침입했다는 사실을 밝혔고, 이러한 혐의들이 갖는 복합적인 중대성을 감안 하원 사법위원회는 정식으로 탄핵심리에 착수.

 

1974년 5월 20일 시리카 판사는 닉슨에게 콕스의 후임으로 특별검사에 임명된 레온 야보르스키에게 나머지 테이프를 넘겨달라는 영장을 발부. 그 후 7월 24일에 연방대법원은 닉슨이 테이프들의 사본을 마땅히 넘겨주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

 

1974년 7월 27~30일 하원 사법위원회는 3개 조항의 탄핵안을 통과시켰고, 8월 5일 닉슨 대통령은 자신이 은폐 과정에 관련되어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3개의 녹음테이프를 내주었다. 이 녹음테이프들이 폭로되자 의회는 완전히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됨.

 

1974년 8월 8일 닉슨은 "이제는 국가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기반을 상실했다"면서 대통령직 사임 성명을 발표.

 

1974년 8월 9일 오전 11시 35분 그는 치욕스러움을 안고 대통령 관저를 떠남.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http://downatthirdman.wordpress.com/2010/08/28/what-if-aamir-had-bowled-in-sideburns-with-ian-chappell-as-captain/, 일부편집수정

 

 

이후 1975년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홀더먼·에일리크먼·미첼 등은 음모·재판 방해·위증죄로 유죄 선고를 받고 2년 6개월에서 8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닉슨은 그의 후임자 제럴드 R. 포드가 1974년 9월 8일 무조건 사면을 내림으로써 더 이상의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사면을 받았다는 것은 죄를 인정한다는 뜻이며, 진실성 없는 권력의 말로가 어떠한지 그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음. [참고: 위키피디아, 네이버지식인 등]


 

그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포폰 사건은 어떤 건가요? 

워터게이트 사건의 경우는 이미 종결된 지 벌써 35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위의 내용처럼 어느 정도 일목요연하게 그 과정을 정리할 수 있지만, 이번 발생한 대포폰에 대한 내용은 현재 그 사실 자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에 제대로 정리할 수 없으나...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http://www.gtksa.org/zbxe/?mid=comm_issue&document_srl=2491519&SSOID=96da5ff810b8bf788c521a468087da31, 일부편집수정

▲ MBC 뉴스데스크에서 보도된 민간인 사찰관련 뉴스 화면 갈무리

 

 

확실한 건 분명히 권력 핵심부에 의해 불법적으로 대포폰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는 사실과 그 대포폰이 활용된 용도가 수사권을 지니고 있지도 않은 국무총리 산하의 일개 조직에서 정치인 및 불특정 민간인의 사찰에 그 대포폰이 동원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위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교를 위해 대략 현재까지 밝혀진 대포폰에 관한 정황들을 검색하여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포폰 사건:
현재까지 알려진 청와대 대포폰 사건의 주요 골자는 2010년 6월 29일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김종익氏) 불법 사찰 -사찰 사유는 그가 방문객도 별로 없던 그의 블로그에 올린 쥐코 동영상이 문제가 되었다고 함- 이 언론에 밝혀지면서 -더 정확히는 PD수첩을 통해- 여론의 뭇매가 거세질 것을 우려한 총리실이 증거인멸을 위하여 대포폰을 사용하였다는 건데, 그 불법 대포폰이 청와대에서 지급했다고 하는 어마 어마한 내용임.

 

2010년 11월 1일 이른바 '청와대 대포폰' 문제는 대정부 질의에서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됨. 그리고 그 대정부 질의 자리에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사실을 인정.

 

이석현 의원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한 질의한 핵심 내용은 “청와대 최모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 명의의 대포폰 5대를 만들어 지원관실 직원들에게 지급했고, 1대는 지원관실 장모 주무관이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된 문서가 저장된) 하드디스크를 외부로 반출해 삭제하는 과정에 사용됐다”는 것.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질의에 “모두 사실”이라고 시인.


2010년 11월 3일 그러나 이에 대해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시인했던 사실을 부인하며 대포폰은 1대고, 공기업 임원이 아니라 KT대리점 주인 가족의 명의로 된 것이라고 주장.


하지만, 신경식 1차장이 언급한 부분에서도 문제는 대포폰의 사용처로써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음.
"청와대 대포폰’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해 총리실 직원들이 증거인멸 작업을 위해 개설됐다는 것. 그리고 청와대 최모 행정관은 증거인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총리실 장모 주무관이 차명 전화기, 일명 대포폰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증거인멸이 이뤄지기 직전 차명전화를 새로 개통했다는 것."


2010년 11월 5일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 신경식 1차장이 밝힌 내용에는 청와대 최모 행정관의 차명전화를 지난 7월 초 개설하고, 8월에 해지했으며 장모 주무관은 지난 7월 7일 경기도 수원의 전산전문업체를 찾아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관련 자료가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맡겨 증거인멸을 하기 직전 최 행정관으로부터 전화기를 직접 건네받았고 함.

 

2010년 11월 7일 이석현 의원 대포폰 관련 검찰 측 주장에 대해 반박하며 추가의혹 제기

▪ 관련기사 ☞ 이석현 "檢,'사찰증거 인멸시점' 청와대와 짜맞춰" 추가 의혹

[참고: 위키피디아, 인터넷 신문 등 다수 참조]

 

 

인터넷의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근거가 명확하다고 판단되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대포폰 사건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대포폰과 민간인 사찰 문제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임에도 청와대가 먼저 거론된 이유는 뭘까요? 그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어떤 조직인지를 살펴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파동을 겪으면서 정권 내부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상시적 감찰 기능이 필요하다는 지적 -실질적으로는 권력에 반대하는 또는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모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탁탁 털어 모든 먼지를 꺼내 굴종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실질적 속내였을 겁니다.- 에 따라 2008년 7월 정부조직 직제상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신설됩니다.

 

말하자면, 표면적으로는 국무총리실 산하 조직으로 되어 있지만, 청와대에 의해 만들어진 위장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비선조직이란 얘깁니다. 이는 10개월간 꼭두각시 노릇만 하다가 세종시 문제로 이젠 고향 사람들로부터도 외면받는 신세가 되어버린 전정 총리가 총리직에 있으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정황만으로도 확실히 증명되는 사실입니다.

 

SBS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청와대 지시로 움직이는 조직"

불감증 대통령과 꼭두각시 내각의, 막장드라마 시즌-Ⅱ 개봉박두!

홍준표 "민간인 사찰 몰랐다면 허수아비 총리"

 

미쿡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이 땅에서 벌어진 대포폰 사건 중 어떤 것이 더 중차대한 문제일까요? 

워터게이트와 대포폰은 모두 권력의 핵심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통치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워터게이트는 특정한 정적(미국 민주당)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인데 비하여 대포폰과 관련된 이번 사건은 특정한 정치인 -심지어 같은 당내 정치인까지- 은 물론 현 권력에 반대하는 불특정 한 민간인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고 불법적인 도구를 활용하여 비정상적인 권력의 강화를 꾀하였다는 점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은 비교 조차 되지 못할 사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에도 그 해당 당사자들의 뻔뻔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영 시답지 않다는 겁니다. 아니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는 거죠. 물론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이야기 속에서는 대단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 미쿡에서 벌어졌던 파장을 생각한다면... 참 한심한 수준입니다. 사안이 보통 사안이 아닌데도... 


분명 공정사회를 말하고 법과 원칙을 부르짖던 자들의 행각에 불법이 저질러지고 그것도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이고 반대한다는 이유로 전방위적인 사찰과 이를 통해 회유와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고 하는 이 엄청난 사실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겐 쉽게 수갑을 채우고 죄를 덧씌우는 검경 수사기관들의 수작에 행여라도 잘못되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너무도 살기에 바빠 이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건지... 


그래서 더더욱 그리 좋아하는 분은 아니지만, 적기에 쓴소리 하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말씀이 참 와 닿는다 싶습니다. 대전일보에 의하면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원 후원금 로비 의혹에 대해선 신속하게 압수 수색하던 검찰이 청와대 관련 사건에는 맥을 못 추는지, 그리고 소극적인지 정말 답답할 뿐”이라며 “약한 권력에는 강하고, 강한 권력에는 약한 것이 우리나라 검찰이냐”

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참말로 듣던 중 아주 정곡을 찌르는 말 아닙니까?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권력에 반대한다고 하여 온갖 감시와 통제로 고분이 말 잘 듣는 국민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생각부터가 반 헌법적인 것이고, 민주주의 국가로써의 모습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대포폰과 관련하여 그것에 연루되었거나 권력에 눈치를 보는 검찰 등에서는 이를 두고 차명폰이라 지칭하기도 한다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대포폰이 지닌 문제의 심각성까지 사그라들진 않습니다. 국격을 따지며 온통 쥐20으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니 만들고 있으면서 정작 국격을 깎아 먹는 꼴을 하고 있지 않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재차.. 아니 늘 하는 말 입니다만, 그런 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보편적 우리들까지 나몰라라 해서야 되는지... 


힘과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될 이 나라의 지금 모습 그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결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이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_ _)

 

 

※ 본 내용에 수정 또는 추가되어야 할 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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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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