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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달걀이 혁신적인가요?


버스, 예전엔 콜롬부스라고 배웠던 거 같은데... 오륀지와 같은 거겠죠? 암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그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찾기 위한 모험 정신의 표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콜럼버스 그를 진정한 모험가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건 올바른 지식을 전파하고자 했던 분들의 깨인 시각과 그 파급에 따른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만큼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 보다 더 좋은 생각과 실천으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이미지 출처: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6/CristobalColon.jpg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년 경 - 1506년 5월 20일) 출처: 위키백과사전



그의 항해일지에 적혀있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 그가 바라본 미지의 세계는 인간이라고 하는 삶의 터전을 지칭한 것이 아닙니다. 스페인 여왕과의 계약에 따라 그가 발견하는 모든 것의 10% -왠지 부가세처럼 느껴집니다.-라고 하는 그 몫이 콜럼버스가 본 미지세계의 실체였습니다. 한마디로 모험심이 아닌 욕심이었던 겁니다. 물론 욕심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그 콜럼버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살육이 뒤따랐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콜럼버스 자신이 죽을 때까지도 그가 찾은 건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것이고 그곳이 인도라고 알았다는 점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했다는 건 자신들의 보위를 위하여 그를 포장하려든 또 다른 지배세력들의 해석일 뿐이란 겁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의를 제기하고 있음에도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 신대륙이라는 말 역시 -교육의 토대와 숨은 목적이 있어 그렇게 서술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건 그들의 생각과 문제일 뿐 다수 사람들의 생각마저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침략을 당해야만 했던 우리들 까지도 이러한 내용에 대해 크게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건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조선시대 이 땅에 표류했던 네덜란드 사람 하멜에게는 신대륙 일지 몰라도, 우리가 살던 이 땅을 우리가 신대륙이라고 말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소리 아닌가 말입니다. 그래서 대중은 무지하다고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과서마다 1942년의 콜럼버스 행적은 아직도 신대륙 발견이라는 업적으로 표현되는 현실이 바로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사실이라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이 아님을 인지하게 되었음에도 대다수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기에 지금껏 그런 것이 아닐까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가 그렇게 계속 말을 하는 한 우린 바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이라고 하는 정신적인 되물림도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온전한 정신적 사고가 역사적 유산이 되고, 유물이 되어 전해졌다고 한다면, 참으로 이보다 좋은 것도 없겠지요. 그런데, 시작의 흐름이 잘못되었기 때문일까요? 그 결과 또한 다르지 않은 현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콜럼버스의 달걀과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된 내용 못지않은 트릭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발견이나 발명, 그래서 아하~!라고 감탄사를 자아내는 그런 것들을 지칭하여 생각의 전환이라고 한다거나 발상, 혁신, 창의 등등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새로움으로써 생각하지 못한 것과 당연히 아닌 것을 제외 또는 배제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혼돈하는 것을 종종 볼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아닌 것을, 그래서 생각하지 않은 것인데, 그런 것을 말해 놓고는 대단한 생각의 발상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도 합니다.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는데, 그 핵심이 되는 대표적 예가 바로 콜럼버스의 달걀입니다. 

콜럼버스의 역사적 행위가 승리이고 성공이라는 측면으로 표면적인 평가가 대세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콜럼버스의 그것에 편승하여 유리한 부류들이 있기에 그런 포장이 몇 백 년이 지나도록 가능해질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정말 아닌데"라는 생각은 떨쳐지질 않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생각하고 계신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만일 아직도 콜럼버스의 달걀이 혁신적이고 대단한 발상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아래 내용을 보시고 차분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콜럼버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달걀을 세울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 질문에는 답변을 하기 전 상기 질문에 대한 의문 사항들을 서로 주고받았어야 합니다. 이를 테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세우면 되는지의 여부 또는 이 질문에 따르는 단서 조항 또는 상기의 의문사항이 전제되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말이죠.

문: 달걀을 세울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건 및 단서조항 : 달걀을 세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이야기 속에 이와 같은 부연적 조건을 담은 내용은 없습니다.

이렇게 단서 조항에 대한 내용이 없이 질문이 나갔다고 한다면, 이 질문은 질문을 낸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답이 바뀔 수 있는 개연성이 아주 큽니다. -사실 그렇게 다양한 대답과 해석이 상존할 수 있는 것이 발상의 전환과 혁신의 밑바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콜럼버스의 달걀은 결국 문제를 낸 사람이 답이라고 하면 답이 되는 그런 것에 불과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kstext.com/elearning/high_school/wh/whpic/whp60/whp6002.jpg

▲ 바보같은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


이 같은 질문은 당연히 달걀을 깨서 세운다는 것은 배제하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런 것도 못하느냐는 식으로 질문자가 달걀 밑부분을 바닥에 대고 냅다 깨면서 이렇게 쉽게 달걀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건 완전 블랙 코메디가 아닐까요?

하지만 아무도 웃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칼을 쥐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가끔 교육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답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될 수 있는데, 한 가지만 답이라고 하는 것을 저만 경험한 것은 아닐 겁니다. 아닌 것이 답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 정도는 그래도 나은 편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저는 콜럼버스의 행적에 대한 평가도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이전에 현재 우리들의 실생활에서 말하고 적용하는 혁신 또는 창의라는 표현들에 있어 콜럼버스의 달걀은 적절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이 먼저라고 봅니다.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사항들인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혁신을 가장한 말장난일 뿐이며 편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혁신과 창의적인 생각들은 분명 찬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닌 것을, 너무도 당연한 것을 말하면서 대단한 발상 인양 둔갑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일 뿐입니다. 물론 넓은 시각에서 남들이 생각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것을 소신 있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측면으로만 받아들이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 둘 정도면 그나마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사이비가 너무 많고, 그 사이비들은 힘으로만 밀어븥이며 그 성과는 고스란히 자신의 이름으로만 사유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과 상처는 당연한 과정이고 자신의 욕심에 의해서 자신이 받은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상처는 영광의 상처로써 성공 신화의 밑거름으로 치부하는 모습은 단적인 예가 될 겁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생각하고 판단할 겨를도 없이 주입되는 여러 요소와 주어지는 환경에 의해 대다수의 우리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받아들이고 말고는 각자의 소신이고,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신은 소신이어야 할 뿐, 어떠한 흐름에 의해서 생각이 좌우될 수 있는 위험성을 포함하여 자신의 시각이나 소신을 힘으로써 상대에게 주입하려 하거나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어떠신가요? 콜럼버스의 달걀이 아직도 혁신적 발상이라 생각되십니까?
 

※ 본 글은 "기 발행 포스트 재정리를 위한 비공개 전환 공지"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전 운영했던 블로그 텍스트큐브의 서비스가 중단됨에 따라 티스토리로 이전을 하게 되면서 개인 도메인을 사용하기 전 발행했던 포스트들의 소실된 링크 등 문제를 개선함과 동시에 지난 포스트들을 새롭게 정리하는 차원으로 기존 발행했던 일부 글 내용을 수정하여 재발행하는 포스트입니다. 보시는 분들의 넓은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 최초 발행일 : 2009.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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