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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정리하며 366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은 정말 사실인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이 말은 너무도 자주 들어왔습니다. 이는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말에 대하여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다"라는 건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현재까지의 헤게모니적 관점에서 기인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흔히 역사란 승자 독식이라고 하는 원칙을 교육이라는 제도를 활용하여 의식과 무의식을 좌우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바로 걱정교과서라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하고만 현재의 위정자들이 추진한 국정교과서는 아주 딱 맞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의 역사 기술은 당연히 패권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욕심은 본능으로 치부되기에 너무나 적절..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이 물음만큼 논란과 주장이 이어온 논제도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 논제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 그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자 하신다면, 팟캐스트 방송 지대넓얕의 깡샘께서 [생로병사] "생의 목적"편을 통해 과거 철학자와 석학들이 주장하고 설파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다뤘으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 [지대넓얕] 126회 - 생의 목적 1[지대넓얕] 126회 - 생의 목적 2 개인적으로는 철학자 혹은 석학들이 제시한 행복에 대한 정의는 적잖이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배경의 전제하에서는 완벽할지 모르나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모두 대입했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보이기 때문이었죠. 이는 실제로도 많은 반박이 이어져 왔다고 앞서 언급한 바를 ..

청산해야 할 말 그리고 되찾아야 할 말과 정신

얼마를 살아야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주관적으로 좀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현재의 제가 느끼는 것 중 사람으로서 항상 견지해야 할 태도는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도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물론.. 공감을 얻고자 하는 바램은 있겠지만요. 개념과 정의는 정말 있는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따라붙는 또 다른 여지가 있죠. 이는 어떤 생각을 도출해 내는데 장애가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도 예외는 있다고나 할까요? 그렇긴 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어떤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경우라면...하지만 이 역시도 그 범위는 아주 한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대 변화.. 아니 변혁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건 지금 ..

민의로 확인하는 권위주의 타파에 대한 다짐

세상을 살다 보면 흐름이라는 것을 인지합니다. 콕 짚어 명확하게 이것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요. 사안에 따라 또는 보는 시각과 상황에 따라 이야기될 수 있는 수많은 흐름을 한마디로 어떻다.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일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우린 모두가 느끼는 어떤 흐름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아직 그 흐름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쉽게 예단하지도 않지만,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왜곡된 힘과 권위에 대한 청산에 있지 않을까 저는 확신합니다.민의의 함성으로 대의민주주의에 있어 첫 번째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을 의결했다는 건 이를 입증합니다. 민의를 받들라는 거죠. 그런데, 국회 탄핵..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의 출발점, 기본소득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그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습니다. 모두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나이가 많은 이들과의 대화에서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더 많습니다. 자신의 경험이 전부라는 착각으로 인해 과거를 현재와 미래에 덧씌우려는 경향이 강하고 나이라는 숫자를 앞세워 가르치려 든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이가 많은 이들이란 60년대 초중반의 연령대 이상을 뜻합니다. 오해하실까 싶어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모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그렇게 느껴진다는 주관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혹, 그럼에도 그 연령대인 분 또는 그 연령대와 관계없더라도 이런 저의 개인적 생각에 반대하거나 기분이 언짢으시다면 뭐~ 그냥 그러려니 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중요한 얘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대화가 ..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시민이 지녀야 할 마음의 자세

이제야 제대로 자리를 잡아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굴절된 시간으로 보면 참으로 긴 세월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세대를 넘어섰으니 말이죠. 그것도 일제 패망 이후 나라를 새롭게 할 수 있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점을 기준으로 한정할 때 그렇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이 땅에서 벌어진 역행의 기억 상기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땅의 역사적 흐름에 역행했던 기억으로 보자면 그 길이는 까마득한 세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이 나라 민초들이 지닌 유전적 기질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면서도 스러지지 않고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문득 소설 태백산맥 마지막 부분에 나오던 하대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 시점에..

이재명 신드롬에 대한 기대와 우려

중심 추는 이미 기운 상태입니다.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민중이 향하는 마음의 방향이라는 민심이 무엇인지 왜곡된 힘들이 겁을 먹고 있는 모습을 통해 이는 분명한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주목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재명 성남시장입니다. 인물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만, 짧게 전제는 하고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닭과 쥐와 같은 동물과 비교할 인물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정치적 행보 이전에 기초지방단체의 수장으로써 시민 행정에 누구보다 앞선 지도자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지지받는 이유도 이를 바탕으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타성적 표현이라 생각해 멀리하고 싶은 말입니다만, 그의 정치적 행보와 발언들을 보면 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만 공감하고(받고) 싶다는 생각

세어 보려고 한 건 아니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2년이란 시간이 어느덧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다른 특별한 것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습관으로라도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잊지 않고자 하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aaronjbarnes.me 솔직히 내가 대체 뭘하고 있는 건지... 뭘 하려고 하는 건지... 결국 얽매임 아닌가라는 자괴감을 느낄 때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렇게 이어 오길 잘했다는 대견하다 생각되곤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스스로를 완벽하게 얽어매는 덫이라 해도 어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주~욱 그러하리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이것이 제겐 매일 끌을 쓰게 만드는 동기부여라고..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이 땅에서 벌어진 역행의 기억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죽 쒀서 개 주는 일은 다신 없어야 한다"는 말처럼 많이 회자되는 것도 없지 싶습니다. 주로 이러한 이야기가 거론될 때면 다음과 같은 역행의 기억이 거론되곤 합니다. 4.19 혁명은 5.16 군사 쿠데타로, 80년 서울의 봄은 신군부 쿠데타로,87년 6.10 민주항쟁은 6.29와 KAL기 참사 조작을 통해 또 다른 군부에게로 모두 귀결되었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문제로 삼는 출발점은 대체로 4.19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오래 전의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그 역행의 기억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아야 할 이유! 사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

미래엔 현재를 야만의 시대라 할지도 몰라

살아온 환경과 그 배경을 통한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과연 이를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이가 있을까요? 상상의 범위를 벗어난다면 모를까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학에서는 "인간 행동과 사회 환경"을 가르치기도 하죠.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역시 알 수 없는 미래에 그 시대를 살아갈 이들이 지금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라고 하는 물음 때문입니다. 과거와의 이해의 차는 현재가 미래보다는 분명히 덜할 겁니다. 기술을 통한 환경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음으로써 지금으로부터 과거 100년 전을 판단하는 것보다 100년 후의 미래에서 지금을 판단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죠. 이미지 출처: investhought.com 사실 현재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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