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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정리하며 366

관점을 생각하면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누구보다 관점을 중시합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좀 복잡한 편입니다. 아니 복잡합니다. 근데, 정작 그 관점을 생각하면서도 왜 그런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에 불현듯 갖게 된 의문입니다. 왜 관점을 생각하게 되고, 왜 그리도 중요시하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보니 인간에게서 관점이란 발붙이고 사는 세계가 3차원인데 비해 (딱 떨어지는 건 아니다 하더라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시야에 상이 2차원으로 맺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당면한 조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생각도 관점에 한정되어 종속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글쎄요~ 이것도 그 한계를 벗어날 경우 확장되는 범위의 규모에 따라 역시 관점의 차이는 발생하겠지만… 어쨌든 그 서로 다른 관점 역시 한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인간의 뇌가 지닌 한계와 언어적 해상도

사람들은 보통 앞서 있는 이들이 말하는 것에 경도되는 순간 그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면서도 대체적으로 그렇게들 보이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언어가 생각을 제한한다. 최근 들어 언어를 어떤 한계를 지닌 ‘해상도’로 표현하는 것을 좀 앞서 있다고 하는 이들로부터 종종 듣게 됩니다. 저는 이 말에 일정 부분 수긍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와 문자는 무한대에 가까운 조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글을 기준으로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누리집의 '누구나 알아야 할 한글 이야기 10+9'에 실제 쓰이는 글자 수는 2500자 안팎"이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자음과 모음을 ..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3

※ 본 포스트는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1"과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물론, 더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겁니다.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무한대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수(數, 手)를 본다고 본 여러 가능한 사항들은 결국 그 자체로만 남는다는 것이 사람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다 붙인 들 그런 건 해결되지도 않을뿐더러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정한 관계 속에서 상호적 신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사람다운 게 아닌가?라고 말이죠. 어쩌면 그래서 진짜 아는 건 실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數, 手)를 언급하는 데 있어 정작 중요한 것을 빼놓고..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2

※ 본 포스트는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럼 재미가 없죠. 법적으로 증거를 제시하는 것에 계약 당사자가 아닌 범죄 여부를 가리거나 어떤 증거를 확보하는 절차에서 녹취 혹은 녹화를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지금부터는 수(數, 手)를 볼 줄 아는 것으로 보이는 이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이로 구분 지어서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數, 手)를 보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이가 "증거 하는 문서만 있으면 되지 무슨 녹취와 녹화가 필요하냐"며 이를 불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문서에 기재된 내용이면 모두 증명할 수 있다고 말이죠. 생각 없이 들을 경우 그럴듯하게 들리고 수긍이 갑니다. 이에 반하여 또 다른 이는 그..

진짜 안다는 건 없는 걸지도 몰라 1

바둑 혹은 장기와 같은 일종의 기예 놀이는 "수(手)"를 얼마나 많이 보느냐로 그 실력이 결정되곤 합니다. 이는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입니다. 부수로 쓰인 한자에서 수(手)의 의미가 손기술, 재주, 행위 등을 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볼 때 바둑이나 장기에서 "수(手)"라는 말을 왜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대략 감이 옵니다. 그 "수"라는 걸 일상에서 겪는 상황들에 대입해보면 어떤 상황을 예측할 때 "경우의 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는 영어로 number of cases로써 숫자의 뜻을 지닌 수(數) 즉, 境遇─數(경우의 수)가 됩니다만, 그 "경우의 수"를 가늠한다는 건 앞서 언급한 바둑 또는 장기에서 뜻하는 수(手)와도 연결됩니다. 단순하게 생각될 수 있는 말이지만 생각해보면 결코..

언제까지 아픔을 더 아픈 상처로 버텨야 하는가

상처의 아픔을 또 다른 상처로 고통이 상쇄됐던 기억이 있습니다. 경험해보신 분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바로 아실 겁니다. 마치 내 불행을 더 큰 불행의 타인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 아이러니... 그래도 이런 정도라면 한편으로 그러려니 하면서 혹은 어떤 상식처럼 또는 마치 지혜를 얻은 듯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타인의 불행이 행복의 기준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런데, 우리가 사회 현실 속에서 감정적으로 느끼는 아픔이라면 얘긴 다르다고 봅니다. 용산참사,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 가습기 사고, 세월호 참사…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젠 섣불리 아프다는 소리조차 쉽지 않은 현실. 왜 이래야만 하는 걸까요? 어째서 비정상이 정상인 양 뒤바뀐 모습이어야 하는지?!!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 지진도..

돈보다 시간

그럴 수도 있겠으나 앞으로는 모르겠고, 지금 당장은 너무도 절실한 문제입니다. 예전 언젠가 모금에 참여하던 어떤 화가가 자신은 그림이 돈이고 돈이 그림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화가 입장에서 돈의 등가 가치가 그림이었다면 현재 적용되고 있는 현실적 상황으로써 시간은 그보다 더한 것이 없지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을 먼저 선택해 볼 것인가? 들을 것인가? 쓸 것인가? 상황에 따라 성격은 다르겠지만 이 모든 건 시간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 제약을 지닌 이 세상의 구조 속에서 너무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말이죠. 말이 쉽지 선택하는 것도 선택되는 것도 간단한 얘기가 아닙니다. 보통은 개인적 입장에서 선택을 하는 것에 더 많은..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책망하다가...

지난 일은 지나고 나면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억을 추억하는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군 복무를 하던 때조차도 그렇게 하는 정도니까요. 바삐 준비하는 행사가 있어 정신없이 일하다가 문득 드는 것이"왜 진작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했을까?"라는 나 자신에 대한 야속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바로 맞받아 떠오르는 생각에서 정확하진 않지만, 왠지"꼭 그렇지만은 아닐 수 있어 너무 나무라진 마~"라는 다독임이 느껴졌습니다. 다행스럽다는 생각은 사실 누구라도 자기를 되돌아보는 이들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또 실제 생각해 보면 지난 시간에 지금 생각되는 것만큼 여유롭지 못했던 적잖은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그런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이런 생각을 ..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 애플에서 답을 찾다

미국의 지역사회 조직가이자 정치 운동가였던 사울 알린스키(Saul Alinsky)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익숙함에서 한 발 멀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석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겠지만 여기서 언급된 무섭다는 건 이해적 측면에서 보면 어려운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관한 사람들의 느낌을 생각할 때 알린스키의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그래서 너무도 정확한 표현으로 와 닿는 아주 명쾌한 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렵다거나 무섭거나 불안한 것의 실체는 사실 그 자체의 느낌이 아닌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막연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장 잘 파악한 부류는 자본가 집단입니다...

책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 읽기를 강조하는 얘기는 많이 듣지만, 책을 읽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그리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일까요? 그 이유를 유추하자면야 책을 통해 생각할 여지가 부여되고 그로 인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는 점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으니 굳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설명을 부연적으로 곁들일 필요는 없다고들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의문은 이 지점에서 한층 더 심해집니다.그건 책만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까요. 우리의 정신과 신체를 통해서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사물은 물론이고,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면을 넘어 이 세상 모든 그 어떤 것이라도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백번 양보해 이전까지의 과거는 그럴지 몰라도 정보시대인 지금은 그러한 고정 관념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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