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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는 헌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12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방 이후 대한민국의 근대사에서 민중의 궐기로 이룬 최초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4.19... 저의 학창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어렴풋이 왜 그랬을까? 하고 궁금함이 가시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웬만한 전통이 있다고 하는 학교 교정에는 어김없이 서 있던 혁명탑. 4.19 혁명을 기리는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아닙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지만, 직감적으로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아님을 어린 눈에도 훤히 보였으니까요.


▲ 4.19 혁명



왠지 4.19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해방과 같은 느낌이었다면 5.16은 엄혹하다고 할까요? 느낌이 달랐습니다. 왜 4.19 혁명을 뒤엎는 5.16이 발발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안타까움을 느꼈던 그때의 기억을 지금도 생생하게 느낍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죽 쒀서 개 준 꼴이라고 말하고들 있죠.


▲ 5.16 쿠데타



그렇게 박정희는 권력을 휘둘렀고, 영구집권을 꾀하기 위해 유신헌법까지 만들어 18년을 독재자로 군림하며 철권 통치를 이어갔죠. 여기에 그의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죽기 전까지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는 건 음으로 양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박정희의 채홍사였던 중앙정보부 박선호 의전과장은 군사재판 과정에서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이것을 제가 발표하면 서울시민이 깜짝 놀랄 것이고, 여기에는 여러 수십 명의 일류 연예인들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단을 밝히면 시끄럽고 그와 같은 진행 과정을 알게 되면, 이것은 세상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균 한 달에 각하가 열 번씩 나오는데, 이것을...


▲ 10.26 김재규 거사



박정희가 죽음을 당한 그 당시 저는 분위기를 제대로 알 수 없던 어린 나이였기에 그때가 어떠했다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그래서 나랏님 돌아가셨다고 얼마나 통곡을 하고 울었는지...), 김재규 입장에서 거사를 실행에 옮기게 된 배경에는 당시 이미 박정희의 명운이 끝날만큼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죠.


그러했으니 당연히 박정희의 죽음은 숨 죽여 살아온 많은 이들에겐 또 다른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80년 봄 그때를 사람들은 서울의 봄이라고 기억하고 있죠. 신군부의 출현으로 끝난 짧디 짧은 그때를 달콤함이었다고 하면 그 상황에 맞지 않는 너무도 센티한 표현일까요?


▲ 5.18 광주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그들은 서울의 봄을 그렇게 가로챘고, 시작부터 온 나라를 죽음의 광기로 몰아넣었습니다. 광주사태가 그랬고, 삼청교육대가 그랬죠. 지금 기억에 뭣도 모르는 무식한 교사들 중에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너 까불면 삼청교육대 보낸다"고 협박을 일삼기도 했고 실제 보낸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놈들이 선생이라고...


죽 쒀 개 줬다는 기억에서 가장 크게 남아 있는 건 아무래도 87년 6월의 기억입니다. 30년이라는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민중의 힘을 확인했던 마지막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 87년 6월



박정희의 군부 독재를 잇는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의 철권통치와 3S 정책으로 상징되는 우민화 정책에도 민중의 분노를 사그라들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그 옛날부터 이어온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최소한의 바램 마저도 저버린 권력자들을 향한 불같은 몸부림이었을 테니... 막아 내려야 막아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신군부 정점의 일원이었던 노태우가 1987년 6월 꺼내 들었던 유화책이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헌법 개정이었죠. 물론, 앞서 직선제 개헌이라고 하는 유화책이라고 말한 건 정작 중요한 건 대통령이 누구냐보다 국민들의 진정한 시민의식, 즉 헌법에 명시된 국가=국민이라고 하는 인식을 갖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나라 민초들의 생각은 거기까지 닿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대통령만 바꾸면 된다는 생각... 더욱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잘못 인지된 권력을 향한 욕심이 그리 대단한 것인지(2017년 현재의 대선 정국에서도 그러하니 거 참~) 1987년 양김으로 대변되던 김영삼 김대중의 분열은 그야말로 죽 쒀 개 준 꼴이 되고 만 겁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는 다들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청산되었어야 할 왜곡된 소수 권력이 다수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되는 30년 세월을 말이죠.




혹자는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그나마 민주 정권이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시절이 지금과 비교해 좀 나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제대로 된 민중을 위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제2의 노무현 시대는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토록 민중에 의한 역사적 진보가 번번이 죽 쒀 개 준 꼴로 끝나 버렸던 악몽은 이번에도 그대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과 우려를 갖게 만드는 구체적 근거입니다. 그리고 구구절절 이렇게 그리 달갑지 않은 그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되새기는 건 헌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야만 한다는 간절함으로...


헌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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